임대와 분양 고른 배치 주거선진국 이뤄
우리도 여건에 맞는 주거해법 정립할 때
시장 영역과 공공재 영역 조화가 중요해
클림트의 키스, 하이든과 슈베르트, 사운드오브뮤직, 쇤브룬궁전, 비엔나커피. 가보지는 못했지만 비엔나 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느낌이 좋다. 얼마 전 동료 오스트리아대사가 건네준 비엔나 주택정책도 그랬는데 ‘비엔나는 다르다’는 슬로건에서 정책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인구 180만의 비엔나는 전체 가구의 60%가 보조금이 지원되는 사회주택에 살고 주거비 부담이 소득의 17%(OECD 평균 22%)로 낮다. 임대와 분양주택을 고루 배치하여 슬럼화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이 어울리는 소셜믹스를 이루고 있다. 1인당 소득 5만달러, 국민부담률 44%가 뒷받침하는 고부담 고복지의 전형이다. 따지고 들면 문제점이 없기야 하랴마는 세금 부담을 토대로 키운 주거 투자의 과실이 달콤해 보인다.
주거비 부담은 세계 공통의 문제이며 저소득층의 상대적 부담은 더 크다. 우리나라도 최근 집값이 오르고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거비 부담이 커졌다.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 동안 주택보급률이 높아졌지만 주거 인프라가 여전히 미흡하며 임대료 지원도 제한적이다. 인구 1,000명당 주택수가 2015년 기준 383호로 영국(436), 프랑스(503), 오스트리아(525), 미국(419), 일본(477)보다 적고, 사회주택 비중이 6.4%로 영국(17.6), 프랑스(18.7), 오스트리아(26.2) 등 유럽국가보다 낮다. 주택공급에 있어 민간 역할을 강조해온 미국과 일본의 경우 사회주택 비중은 4% 내외로 낮지만 주택 재고가 많고 취약계층 대상으로 임대료가 지원된다.
그리 비싸지 않은 주택 공급과 주거비 안정은 빈곤을 줄이고 기회 균등과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주요 수단이다. 모든 국민에게 쾌적한 주거생활 권리를 보장한 헌법 제35조의 국가 의무를 이행하려면 주거여건 개선을 위한 돈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주택은 주거 수단일 뿐 아니라 자산이기도 해서 시장 영역과 공공재 서비스 영역이 혼재되어 있다. 어떤 해법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주택공급에 있어 정부와 민간의 역할, 집값 안정과 임차인 보호를 위한 시장개입 수준, 주거비 보조 방식, 재정 소요가 달라진다. 나라마다 해법이 다르지만 유인 구조, 비용 부담 측면에서 정합성을 갖추고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줄여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집값의 급등락과 쏠림 현상을 막고 수급 안정을 기하는 것은 주거비를 낮출 뿐 아니라 거시경제 위험을 줄이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최근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주택 수요를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하고 임대사업자를 양성화하며 부동산소득 과세를 정상화하는 방향성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투기과열지구나 투기지역 지정은 시장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절하면 되겠지만 대책의 골간은 자동안정화 장치로서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주택정책의 기본 틀로 정착시켜야 한다. 강력한 수요 관리가 민간 주택공급에 미칠 영향에 유의하고 서민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임대주택 공급이 늘면 집값의 변동성이 낮아지고 무리한 대출로 집 살 동기도 줄어든다. 정부 계획상 공적 임대주택은 매년 17만호 공급되어 2022년까지 그 비중이 9%로 높아질 전망인데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유도할 방안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다. 주거 안정의 다른 한 축인 취약계층 주거비 보조 등 다양한 정책 간의 조합과 우선순위, 도덕적 해이 최소화 방안, 재원조달 문제 등 주거복지를 위한 비전과 추진전략에 대한 치밀한 디자인과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투자가 축적되어야 효과가 나타나는 주거복지를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다. 주택 부족과 열악한 주거환경 때문에 폐결핵이 ‘비엔나병’으로 불릴 정도였던 비엔나는 남들과 다르게 접근하고 100년에 걸친 노력으로 주거복지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비엔나 방식이 답이 되긴 어렵지만 우리도 처지에 맞는 지속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주거해법이 필요하다. 9월에 발표되는 주거복지 로드맵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윤종원 주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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