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은 사실 핑계예요. 오래 전부터 셋이 뭉쳐서 공연해 보자고 얘기를 하다가 올해까지 오게 된 거죠.”
1990년대 서울예대 재학 시절부터 죽이 잘 맞았던 뮤지컬 배우 이건명(45) 이석준(45) 배해선(43)이 한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의 섭외에 응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배우 본인들이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다. 29일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틱틱붐’이다. 1996년 대학 졸업 무렵 프로로 데뷔한 만큼 20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하는 취지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일종의 동창회’라고 이번 공연을 정의 내렸다. 세 사람이 한 공연에 동시에 출연하는 건 2005년 뮤지컬 ‘아이다’ 이후로 처음이다. 세 배우를 18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세 배우가 중심에 선 이번 작품은 모든 출연배우와 스태프의 개런티가 없다. “‘이번에 이런 공연을 올리는데 잘 되면 수익을 나누고, 수익 없을 수도 있다’ 말씀 드렸더니 많은 분들이 기꺼이 참여해 주신 거죠. 복 받았다고 느껴요.”(이건명) 후배 배우들은 물론 ‘틱틱붐’의 2001년 초연 무대에 올랐던 선배 성기윤도 기꺼이 동참했다.
‘틱틱붐’은 뮤지컬 ‘렌트’로도 유명한 극작가 조너선 라슨(1960~1996)의 작품이다. 낮에는 웨이터로 일하고 밤에는 작곡을 하며 브로드웨이를 향한 꿈을 키워나가는 존을 이건명과 이석준이 연기하고 존의 여자친구 수잔을 배해선과 정연이 번갈아 맡는다. 이석준은 “20주년을 얘기할 때 이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은 거론한 적도 없을 정도로 당연히 ‘틱틱붐’이었다”며 “뮤지컬 치고 넘버가 12곡으로 적은 대신 굉장히 연극적으로 풀어가는 작품인데 그 메시지를 배우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모두 ‘틱틱붐’과 연이 깊다. 이건명은 초연 무대에 올랐고, 2005년 배해선과 이석준이 두 번째 공연을, 세 번째 시즌에선 배해선과 이건명이 주역을 맡았다.
꿈과 이상을 갈망하는 주인공과 같은 20대를 보냈던 이들은 2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시절 추억을 곱씹었다. “제가 학번으로는 후배인데, 우리 셋은 되게 성실파, 진지한 사람들이었어요. 남아서도 연습하고, 그런 점이 잘 맞았던 거 같아요.”(배해선) 뮤지컬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 세 배우도 앙상블로 수많은 무대에 섰다. “예전엔 작품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죠. 무대에서도 기술적으로 보여줄 게 많지 않으니까 사람이 다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앙상블이 40명씩 나갔어요.”(이석준) “예전에 마지막 장면을 위해 무대 위에서 멋지게 춤을 추고 딱 끝났는데, 불이 꺼지고 난 뒤 배우들이 직접 세트를 밀면서 무대 뒤로 들어가면 관객들이 웃었다니까요.”(이건명)
수십명의 앙상블 중에서도 맨 앞줄과 중심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뒷모습만 볼 수 있었던 주인공 선배의 자리에 서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오늘의 배우들을 만들었다. 요즘은 단기간에 주연을 맡고 스타덤에 오르는 뮤지컬 배우들이 늘어난 점이 예전과의 차이라고 말했다. 이석준은 “요즘은 좋은 재능을 타고 나서 바로 주역이 되는 후배들을 보면, 물론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걸 쌓아가겠지만, 그 자리를 어쩌면 우리만큼 소중하게 못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20년을 뮤지컬과 연극계를 종횡무진 해 온 이들에게 서로가 보는 인생에 꼽을 만한 작품을 물었다. 배해선의 ‘인생작품’으로 이건명과 이석준은 동일하게 ‘맘마미아’의 소피를 꼽았다. “정말 소피 같았다”는 이유다. 이건명은 뮤지컬 ‘렌트’가 꼽혔다. 이건명은 2000년 ‘렌트’ 초연에서 마크 역을, 그 후에는 로저 역을 맡았다. 이석준은 “건명이가 ‘렌트’를 4년이나 기다렸다는 걸 알아서 마크 때도 정말 잘했지만, 그 후에 로저를 할 때는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가 보였다”며 “기타를 치는 장면이 그림 같았다”고 말했다. 배해선은 “이건명의 마크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며 “또 ‘겜블러’에서 노래를 들을 때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인 줄 알 정도로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석준의 인생작품으로는 ‘카르멘’의 돈 호세와 ‘틱틱붐’의 존이 꼽혔다.
2017년 ‘틱틱붐’에서는 지금껏 자신들이 걸어온 시간이 자연스럽게 녹아 든 진짜 호흡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선택해 봐, 어떻게 살지’라며 도전 정신을 전하던 엔딩 넘버의 가사는 ‘생각해봐,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로 바뀌었다. 한 번쯤 멈춰서 지금의 행복을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담긴 배우들의 선물이다. 시종일관 “이렇게 매일 얼굴을 보며 연습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던 세 배우는 “생각해보니 이건명과 이석준이 같은 역을 연기해 엄밀하게 한 무대에 서는 건 아니다”며 “30주년엔 3인극을 해야겠다”고 웃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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