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 대상이던 한국 경제발전의 그늘
고도성장과정에서 인간존엄성 소홀히 해
99%를 패배자 만드는 교육 되돌아 봐야
필자는 지난 15, 16일 이틀 동안 말레이시아 고등교육부와 말라야 국립대학이 주최하는 '대학의 리더십과 거버넌스 회의(University Leadership and Governance Conference)'에 다녀왔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아시아는 세계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교육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수익성 분석을 할 필요조차 없는 좋은 투자로 생각하고 대학에 보냈다. 그 덕에 많은 대학이 생겨났고, 교육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산업역군으로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고도성장이 가능하지 않게 되고, 졸업 후 취업도 어렵게 되자 부모들은 자식 교육의 수익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덜 낳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대학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위 회의는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 책임자들이 함께 모여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회의였다. 필자는 마지막 세션에서 한국의 경험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했다.
이번 회의의 첫 강연은 '지식의 탈 식민화(De-colonizing Knowledge)'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였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과거부터 이제까지 지식이 어떻게 해서 생성되고 확산되었는지를 강의하던 연사는 끝날 즈음에 뜻밖에도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러운 점을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하던 필자에게 연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내용을 발표했다. 요지는 말레이시아가 동방정책으로 배우고자 노력해온 한국이 경제발전은 이루었으나 오늘날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말레이시아는 1981년 제4대 마하티르 수상 취임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는 소위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발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서양 특히 옛 종주국인 영국을 향했던 말레이시아의 자세를 동방 특히 일본, 한국으로 눈을 돌려 기술과 경영을 배워 말레이시아의 공업 발전과 근대화를 가속화하자는 정책이었다. 그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공무원을 우리나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위탁해서 3주 동안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필자는 몇 년째 그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들은 말라야 국립대학의 한 공무원이 필자를 연사로 추천한 덕분에 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의 자살률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필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뇌 끝에 필자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기로 했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1961년 1인당 소득은 100달러 미만으로 300달러에 가깝던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그런 여건에서 경제발전을 도모하다 보니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능력을 개발해서 활용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정부 조직마저 교육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꿀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육이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보고 개발(Human Resources Development)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개발(Human Being Development)을 할 때가 되었다는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가난 극복을 위한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홀히 했던 인간의 존엄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한국이 경제성장은 이루었다고 하지만 행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외국 학자의 지적을 들으며, 필자는 우리의 교육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친구도 경쟁 상대가 되는 입시제도 하에서 99%를 패배자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을 키워낼 역사적 책무가 우리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심정으로 필자는 귀국길에 올랐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ㆍ전 IMF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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