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국내시장에 출시될 랜드로버의 신차 ‘벨라(Velar)’는 레인지로버 라인업에 네 번째로 추가되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지난 ‘2017 서울모터쇼’ 공개 후 평균 1억 원이 넘는 차값과 이전에 없던 신기술 탑재로 꾸준한 관심을 받아온 차량이다.
지난 22일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주최 언론 시승회를 통해 다음달 신차 출시에 앞서 벨라의 상품성을 짧게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시승코스는 서울 잠원지구를 출발해 인천 영종도를 돌아오는 왕복 130km의 구간으로 구성됐다.
먼저 레인지로버 벨라의 외관 디자인은 한마디로 “시선을 사로잡는 늘씬하고 우아한 외모”로 축약할 수 있겠다. 뒤로 누운 윈드 실드와 후미로 갈 수록 좁고 낮아지는 지붕, 문손잡이 조차 숨기며 매끈한 라인을 뽐내는 측면 디자인은 벨라를 더욱 늘씬하고 날렵하게 꾸며주는 요소들이다. 특히 공기저항계수 0.32Cd를 기록한 매끈한 디자인은 측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외관 디자인이 ‘잘 빠졌다’면 실내는 최첨단 테크놀러지의 향연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돌리는 다이얼 두 개를 제외하면 기능 조작 버튼들은 모두 숨었다. 시동을 걸기 전 실내는 매끈하고 새까만 디스플레이로 들어 찼을 뿐.
하지만 시동을 걸자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등 각종 안내 및 조작 버튼이 휘황찬란한 그래픽을 드러낸다. 생전 처음 접하는 센터터널로 이어지는 구간에도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다. 랜드로버 측이 자신 있게 강조하는 ‘터치 프로 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두 개의 디스플레이와 다이얼로 주행 모드부터 실내 공조 시스템은 물론 각종 인포테인먼트의 손쉬운 작동이 가능하다.
벨라의 실내는 고해상도 안내 이미지가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알아채고 조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친절하게 돕는다. 음량이나 온도, 모드 전환 등은 다이얼로 조작할 수 있어 운전자의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물론 스티어링휠에 있는 버튼마저 디스플레이에 이미지가 표현된다. 메뉴를 누르면 버튼 이미지가 현재 보고 있는 화면에 맞게 바뀐다. 운전자 주변이 온통 디스플레이다. 누구나 영화 속 미래의 자동차를 탄 느낌을 받을 듯 하다.
시승차는 레인지로버 벨라의 라인업 중 ‘D240 R-다이나믹스 SE’ 트림으로 구성됐다.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51kg.m을 내는 4기통 트윈 터보차저 디젤엔진을 품었다. 시동을 켜면 온갖 디스플레이에서 불이 켜져 한번 놀라고, 실내 정숙성에 한 번 더 놀란다. 디젤엔진의 소음과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여기에 풍절음과 노면소음은 더 잘 차단돼 일단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정숙했던 엔진음은 외부 소음에 더욱 잘 녹아 든다.
벨라는 운동성능을 과시하고 싶은 모델이 아니다. 분명 힘은 남았지만 마구 쏟아내지 않았다. 급하게 방향을 틀고 속도를 바꿔도 시종일관 차체의 움직임은 여유 있게 조절되고 롤링과 피칭 등은 최소화됐다. 역동성을 덜고 승차감에 치중한 부분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벨라는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으며 급가속 할 경우 기어를 2단이상 확 낮춘다. 4단으로 정속 주행 중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자 2단으로 변속되며 회전수가 치솟는다. 8단에서는 5단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급격히 기어가 내려가고 회전수가 오르는데도 기대처럼 치고 나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꾸준히 가속된다. 고속에서도 계속 더 속도가 오르는 것으로 봐서 힘이 부족하다기 보다 벨라가 차체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조절한다는 생각이 든다.
터보렉도 조금씩 느껴지고 변속도 좀 더디다. 원하는 타이밍보다 한 박자 늦었다. 다이내믹 모드는 정차 시에도 회전수를 높게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반응했지만, 역시 변속 타이밍이 아쉽다. 고속에서는 안정적으로 지면에 가라앉는다는 느낌을 받지만 실제로 시속 105km를 넘으면 차고가 10mm 내려간다는 관계자 설명을 후에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높고 큰 차체를 지녔지만 코너에서 안정적으로 자세를 잘 잡는 모습은 랜드로버 엠블럼이 어색하지 않다. 고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가도 실내에선 큰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이 평온하다. 도중에 속도를 바꾸고 스티어링휠을 움직여도 차체의 흔들림이 거의 없다.
노면 상황은 땅에 맞닿은 바퀴에서 정보를 전달받는 스티어링휠과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통해 느껴진다. 에어 서스펜션이 외부 충격을 잘 걸러 차체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기 때문. 바닥의 요철을 몸보다 지나가는 타이어 소리나 서스펜션이 충격을 받는 소리로 더 크게 느낀다. 그렇다 보니 차 안에서 몸이 받는 피로감이 적다.
다만 시트는 푹신하지 않고 평평하고 넓다. 몸을 감싸 안는 느낌은 전혀 없다. 시트 한 가운데 몸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을 정도다. 시트 양 옆은 몸을 감싸기 위해 조금 세워져 있는데 시트가 커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 위치에 비해 시트가 높다. 체형이 작은 사람까지 고려하지 않았나 보다. 분명 제일 낮게 시트를 조절했는데도 무릎에서 운전석 바닥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벨라는 레인지로버 보다 분명 주행질감이 덜 고급스럽다. 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버튼을 없애고 대형 디스플레이로 전부 대체해 레인지로버와 또 다른 시대의 차를 보는 것 같다. 차체 거동은 안정적이고 파워트레인의 힘도 충분하지만 역동성은 덜하다. 다양한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이 있다는데 시승코스에서 오프로드를 달려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결론적으로 벨라는 레인지로버가 부담스럽고, 이보크는 공간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한 모델이다. 그렇지만 두 모델의 평균이 되는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두 모델의 다음 세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 벨라는 레인지로버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가장 저렴한 D240 S 트림이 9,850만원이다. 거의 1억인 셈이다. 이날 시승한 차량은 D240 R-다이나믹 SE 트림으로 1억860만원이다.
여기에 동일한 차체를 쓴 재규어 F-페이스의 가격이 6,910만원이면 살 수 있고, 랜드로버의 중형 SUV로 이미 디스커버리가 있다. 디스커버리는 같은 엔진이 들어간 Sd 2.0 디젤 모델의 가격이 8,930만원이다. 왜 유독 벨라만 더 비쌀까? 벨라의 디자인과 인테리어, 탑재된 IT 기술의 차이일까? 각 모델들의 가장 저가 트림을 기준으로 벨라 보다 저렴하지만 비슷한 체급의 라이벌을 꼽아봤다, 모두 프리미엄 브랜드 모델들이다.
라이벌 1. 같은 섀시 다른 브랜드, 약 3,000만원 더 저렴한 가격. 재규어 F-페이스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초크 43.9kg.m, 4기통 싱글터보 디젤엔진이 들어간 프레스티지 트림이 6,910만원.
같은 차체를 바탕으로 했다. 긴 보닛에 짧은 오버행, 뒤로 갈 수록 아래로 떨어지는 지붕과 살짝 들어올린 하단을 비롯해 전반적인 라인은 비슷해 보이지만, 각 브랜드의 디자인 요소를 더해 완성한 생김새가 주는 인상은 완전히 다르다. F-페이스는 보다 공격적이고 스포티하다. SUV에서도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어한 흔적이 역력하다. F-페이스에서 벨라의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잠시 시승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벨라와 가장 큰 차이는 가속감 이다. 벨라는 힘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면 F-페이스는 초반부터 힘을 마구 쏟아낸다. 분명 SUV인데 훅 치고 나가는 가속감이 있다. F-페이스와 벨라는 차체만 같고 생김새부터 주행성향까지 완전히 다른 성향이다. 벨라는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우아한 아가씨라면 F-페이스는 혈기왕성한 운동선수 같다. F-페이스가 출시하면서 지목한 라이벌은 BMW X5였다. X5 역시 벨라 와는 다른 성향이다.
라이벌 2. 가족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볼보 XC90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8.9kg.m, 4기통 트윈터보 디젤엔진이 들어간 D5 AWD 트림이 8,030만원.
가격과 중형 SUV라는 특징을 놓고 보면 볼보 XC90과도 비교할 수 있다. 생김새는 XC90과 레인지로버 벨라도 완전 다르다. 볼보 XC90의 생김새는 듬직하고 근사하다. 수려한 라인은 없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기능에 맞는 디자인, 꾸미지 않은 단아한 모습이다.
레인지로버 벨라와 XC90의 진가는 차에 올라 탔을 때다. XC90의 대시보드 한 가운데 붙어 있는 태블릿 같은 커다란 모니터부터 각종 운전 보조 장치와 편의장비 등은 레인지로버 벨라와 비슷하다. 미래의 자동차를 엿보는 기분이다. 운전 중에 개입하는 각종 안전 보조 장치들도 믿음직스러워 운전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주행 질감 역시 운동 성능을 과시하기보다 안에 탄 탑승자를 더 신경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역시 볼보 XC90에 더 많은 자율주행 기술에 기반한 운전 보조 및 안전 장치들이 들어가 있다.
라이벌 3 코너링은 아쉽지만 편안하면서고 강력한 고속 주행이 강점. 벤츠 GLE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51kg.m, 4기통 싱글터보 디젤엔진이 들어간 250d 4매틱 트림이 8,530만원.
메르세데스-벤츠의 중형 SUV GLE도 가격이나 크기 활용도 면에서 벨라의 경쟁 상대로 꼽을 수 있다. 디자인은 작년 부분변경을 거쳐 메르세데스-벤츠의 패밀리룩을 하고 있지만, 기존 모델인 ML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최첨단 자동차 같은 느낌은 적지만 충분히 고급스럽고 세련됐다.
헐레벌떡 뛰쳐나가거나 힘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듬직하고 힘차게 내달린다. 빠르게 달린다는 느낌과 안정감을 같이 주는 차는 흔치 않다. 에어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조율되어 있어 정속 주행에서 편안함이 극대화 된다. 다만 크기와 무게 탓인지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코너를 돌아나갈 때 허둥대진 않지만 하중이동이 크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다른 차들과 차별화 되는 점은 9단 변속기가 달렸다는 것. 언급된 다른 라이벌들은 모두 8단 변속기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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