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ㆍ사우디 개입에 전쟁 장기화
정부군 봉쇄에 반군 물자도 막아
2년간 9500번 공습 도시 초토화
식량ㆍ약품 부족 위생 급속 악화
4월 발생한 콜레라에 속수무책
50만명 이상 감염 2000명 사망
2년 반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예멘에서 근래 최악의 콜레라 유행으로 인해 약 2,000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극심하다.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 발생한 내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됐고, 그 사이 정부가 사회유지기능을 상실하면서 민간인 희생만 늘고 있는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방송 등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예멘을 집중 조명했다. 지난 14일 발행된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에서 올해 4월 발생한 콜레라 감염자가 50만명을 넘었다.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콜레라 유행 가운데 단일국가로선 최악의 피해다. 사망자도 이미 2,000명에 이르렀다.
BBC가 전한 현장의 상황은 처참하다. 예멘 여성 사미라는 생후 18개월 된 딸 오르조완을 안고 학교 건물에 임시로 마련된 콜레라 진료소로 달려왔다. 오르조완의 몸 크기는 같은 연령 아동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며 척추가 앙상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예멘의 5세 이하 아동 50만명이 오르조완처럼 기아 상태에 빠져 있다. 사미라 자신도 건강이 좋지 않아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다.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아동들은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체 콜레라 감염건의 41%, 사망자 약 4분의1이 어린이다.
WHO는 오랜 전쟁으로 정부가 사실상 붕괴되고 위생 여건도 악화된 것이 콜레라 유행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선 별 것 아닌 질병인 콜레라도 의료지원이 부족한 예멘에선 치명적 질병으로 변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예멘은 병원도, 의약품도, 깨끗한 물도 모자라다”라며 “역병에 시달리는 민간인을 구할 방법은 오로지 평화 뿐”이라고 주장했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의 호소가 무색하게도 내전은 오히려 격화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23일에도 정부측 공습으로 수도 사나 북쪽 근교 아르하브에 있는 한 호텔이 파괴돼 최소 50명이 숨졌다. 14일 발행된 유엔난민기구(UNHCR)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7월 현재까지 공습은 5,676회 진행됐다. 201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공습은 3,936회였다.
예멘 내전은 2014년 시아파 중심의 북서부 후티 반군이 알리 압둘라 살레흐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사나를 장악하자 2015년 기존 정부 측 압두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사우디 등 국제동맹군의 지원을 받아 반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배후지에 시아파 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막으려 국제동맹군을 조직했고 미국과 영국도 사우디 국제동맹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그 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세력도 테러를 일삼으며 세력 확대에 나섰고, 올해는 이란이 반군측에 최신 무기를 공급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기나긴 전쟁과 사회 혼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에 전가된다. 사우디 정부는 반군을 억누르기 위해 2015년부터 대대적인 봉쇄정책을 폈고 식량과 의료지원을 받지 못한 예멘인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후티 반군 역시 민간인 학살과 국제사회의 구호품 공급을 방해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엔은 “예멘이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빠졌다”라며 예멘인 최소 1,000만명이 즉각적인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호소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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