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 선장 영토 첫 발견한 인물 기록
원주민들 “문구 수정” 거센 비판
대만선 장제스 지우기 재점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사태를 기점으로 남부연합 기념 동상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호주,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이른바 ‘동상 전쟁’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인종주의, 독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갈등이 빚어지는 것인데, 최근 정치권이 논쟁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한층 거세지는 모습이다.
호주의 경우 수도 시드니 도심의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조각상 논쟁의 중심에 있다. 쿡 선장은 유럽의 관점에서 호주 대륙을 처음 ‘발견’한 인물로, 동상에도 “1770년에 이 영토를 발견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호주 공영 ABC방송의 원주민 출신 진행자인 스탠 그랜트는 23일(현지시간) “쿡 선장이 우리 역사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호주를 발견하지는 않았다”며 문구 수정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그랜트는 “6만년 전부터 이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며 “이는 원주민들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는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랜트는 이어 쿡 선장 동상의 문구뿐 아니라 원주민을 주요 역사로 다루지 않는 역사관 전반을 겨냥했다. 그는 “호주 전역에 원주민을 강제로 몰아낸 인물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이에 관한 정확한 사실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며 원주민 발자취를 포함한 역사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랜트의 지적을 놓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찬반 논란이 이는 가운데 보수 진영은 이를 역이용해 야당에 공세를 펼치고 나섰다. 강경 보수 성향의 자유당 소속 토니 애벗 전 총리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노동당의) 빌 쇼튼 대표가 총리가 되면 쿡 선장의 동상은 모두 철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만에서도 20여년 넘게 이어져 온 장제스(蔣介石) 초대 총통의 동상 존치 논쟁이 최근 양안 갈등과 함께 재점화하고 있다. 1949~1975년 국민당 일당독재 철혈(鐵血)정치를 펼친 인물이자 대만 내 ‘통일파’ 상징인 장제스 기념상은 2000년대 초반 200여개 가깝게 철거됐으나, 여전히 대만 전역에 수천개가 남아 있다. 지난 4월 독립파 단체들이 동상의 머리 부분 절단 소동을 벌이고 독립 성향의 민진당 의원이 동상 철거안을 발의한 바 있다. 특히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도 장제스를 기리는 중정(中正) 기념당의 용도 변경을 추진하는 등 탈(脫) 장제스 노선을 분명히 해 이들 진영에 힘을 싣고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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