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발포 하루 전 결정 추정
軍의 “계엄군 자위권” 주장과 달라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에게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처음으로 나왔다. 군은 그 동안 계엄군이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한 적은 있지만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5ㆍ18기념재단은 24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광주 소요 사태(21-57)’ 문건 1장을 공개했다. 5ㆍ18 당시 광주에 주둔했던 505보안부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첩보 상황 일지 형태의 이 문건엔 ’23:15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게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하달(1인 당 20발)’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별(*) 표시와 함께 ‘광주 소요가 전날 전 지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산 주둔 해병 1사단 1개 대대를 목포로 이동 예정.’이라는 상황도 기록하고 있다. 이 문건의 맨 마지막 줄엔 ‘(80. 5.21 0:20 505)’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기념재단 측은 이를 근거로 이 문건이 작성된 시점은 1980년 5월 21일 0시20분(80. 5.21 0:20 505)이고, 문건 내용도 5월 20일 상황을 적어 놓은 것일 개연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자행되기 하루 전날 이미 집단발포 결정이 이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문서 작성 시점을 놓고 문건을 작성한 보안부대의 오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5ㆍ18연구자들은 이날 공개된 ‘광주 소요 사태(21-57)’ 문건의 제목에 있는 숫자를 5월 21일 57번째 작성된 문건이라는 의미로 보고 있다. 실제 ‘광주 소요 사태’ 제목의 문건 중 일련번호가 ‘21-56’, ’21-58’인 것도 발견된다. 문제는 57번째 문건보다 앞서 작성된 56번째 문건에 기록된 상황 보고 내용엔 57번째 문건의 상황 내용보다 늦은 21일 오후 11시30분 상황을 담고 있고, 이 내용은 실제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5ㆍ18연구자는 “5ㆍ18당시 당시 광주지역 시위 등에 대한 군의 상황보고가 시간대별로 이뤄진 데다, 당시 광주에 주둔한 보안부대가 작성한 광주 소요 사태 문건을 일련번호로 연결해 볼 때 이번에 공개된 문건의 마지막 줄에 적힌 숫자는(80. 5.21 0:20 505)는 5월 22일의 오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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