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을 두고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다른 생리대가 릴리안보다 나쁜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여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국내 시판되는 생리대는 무려 252종(팬티라이너 포함). 이중 부작용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수치가 공개된 것은 릴리안 제품 3개가 유일한 상태다. 그것도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여성환경연대) 주도로 강원대 김만구 교수에게 연구 의뢰해서 발표한 수치다.
릴리안 제품이 VOCs 수치에서 5개 생리대 제품 중 1위, 5개 팬티라이너 제품 중 1,2위를 차지한 것만이 알려졌는데, 문제는 나머지 제품에서도 모두 VOCs가 방출됐다는 점이다. 더구나 발암성 1군 물질이자 생식독성인 벤젠은 미량이지만 3개 제품에서 검출됐는데, 이는 모두 릴리안 제품이 아니며 제품명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를 전수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10개 제품만 브랜드가 공개될 경우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결국 릴리안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부작용 사례도 릴리안에 한정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이날 릴리안 생리대 사용 이후 부작용 경험사례 3,009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65.6%은 생리주기 변화를 경험했으며, 생리 양이 줄었다는 응답도 85.8%였다고 밝혔다. 68.0%는 생리통이 심해졌다고 했고, 질염 등 여성질환을 겪었다는 여성이 55.8%에 달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소장은 “생리대 사용에 대한 불편함과 각종 증상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폄하돼 관계 기관이 책임 있게 조사나 대책을 마련한 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위생용품 속 유해물질의 원인을 규명하고 관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날 깨끗한나라는 릴리안 전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생리대는 안전해서가 아니라 릴리안에 비해 점유율이 낮아 부작용 사례가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VOCs는 페인트, 접착제 등에서 방출돼 새집증후군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호흡기질환과의 연관성이 주로 보고돼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깨끗한나라가 공개한 성분을 보면 접착제로 쓴 스틸렌부타디엔공중합체와 각종 향 성분을 휘발성유기용매로 녹이는 과정에서 화합물이 방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또 생리대의 밀폐력이 좋을수록 방출된 물질과 생리혈로 부패된 유기물이 빠져나가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VOCs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 여성환경연대가 조사한 10개 제품에서 검출된 스틸렌(10개 제품), 톨루엔(6개 제품), 벤젠(3개 제품) 등은 생식과 관련한 호르몬을 교란시켜 생리주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조현희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환경호르몬을 여성에 직접 투여할 수 없으니 관련 임상시험 연구가 미비한 게 현실이지만 질 점막은 입 안처럼 흡수력 뛰어난 신체부위여서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한정열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검출된 용량을 보면 급성독성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생식독성과 신경독성이 있는 물질의 경우 임신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등 만성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식약처는 부랴부랴 주요 생리대 제조업체들에 대해 현장조사에 나섰다. 식약처는 이날 깨끗한나라를 비롯한 유한킴벌리, 엘지유니참, 한국피앤지, 웰크론헬스케어 등 5개 제조업체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생리대 시중 유통량의 90%를 차지한다. 식약처는 “접착제 과다 사용 및 제조공정을 조사하고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반사항이 확인되면 행정처분 및 제품 회수 등을 조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좀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과 교수는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외 다른 제품과 다른 제조사들도 구멍이 있을 수 있다”며 “위해 평가에는 1년 이상이 걸린다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다양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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