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당 대표 병원 간다고 해서 이탈하면 지탄 받겠죠? 그리고 사무총장님은 의원들이 당 대표가 자리에 없다고, 탄핵하자고 비난하지 않도록 간식 좀 풍부하게 제공해주면서 단속해주시길 바랍니다.(웃음)”
25일 홍익대 세종캠퍼스에서 열린 2017 정기국회 대비 더불어민주당 워크숍. 목에 지압패치를 붙이고 등장한 추미애 대표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인사말만 남긴 채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27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추 대표는 당 대표를 맡은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치르고, 여당 대표로 정국의 중심에 서기까지 단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었던 탓이다. 그 사이 민주당은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지지율은 50%를 상회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농담이긴 해도 스스로 당 대표 탄핵을 입에 올릴 만큼 추 대표의 지난 1년은 순탄치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스토리를 결정적 3장면으로 구성해 돌아본다.
①친문 등에 업은 추다르크, 프로탄핵러가 되다
추 대표는 지난해 8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문계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54%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제1야당 대표에 선출됐다. “계파에 기대지 않고 정치를 해왔다”고 공언한 추 대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파정치의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었다.
‘강한 야당’을 표방했던 추 대표는 취임 직후 더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면서다. 추 대표는 국회에선 야3당과 공조하며 탄핵 절차를 진행하는 동시에 광장에서는 촛불 민심과 보조를 맞추며 탄핵 정국을 이끌어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부 논의를 거치지 않고 박 전 대통령과의 단독 영수회담을 불쑥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는 등 스텝이 꼬이기도 했다. 추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전격적인 담판을 통해 문제를 조기에 풀기 위해서였지 결코 자기정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고 일부 네티즌들은 추 대표에게 ‘프로탄핵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한 원죄로, 줄곧 참회록을 써왔던 추 대표가 12년 만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거듭나며 정치적 트라우마를 극복한 점을 함축한 표현이었다.
②’민주당 퍼스트’ 외치며 대선 승리의 중심에 서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펼쳐진 조기 대선 국면에서 추 대표는 ‘민주당 퍼스트(우선주의)’를 외치며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 했다. 추 대표는 2012년 대선 패배 원인은 민주당이 모래알처럼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선거는 캠프 위주가 아니라 당이 중심이 돼 치러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던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기간 내내 “민주당 정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힘을 실어줬다. 추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민주당은 똘똘 뭉쳤고, 9년 만에 집권여당 타이틀을 회복할 수 있었다.
대선 직후에도 추 대표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추 대표는 민주당에서 별도의 인사추천위원회 기구를 꾸려 당 차원의 인재 추천 권한을 행사해 새 정부의 조각 작업에 힘을 보태려 했지만, 청와대가 부담스러워하면서 시작도 못해보고 좌절됐다. 대신 당헌에 당이 인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재량 조항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추 대표는 정권 출범 직후부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단독 회동 정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취임 첫 날 짤막한 통화 이후, 한 달 넘게 연락을 주고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추 대표 주변에선 서운함을 토로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추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대통령과) 통화는 직접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③당 안팎의 갈등, 추미애 리스크 시험대에 서다
여당 대표 3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추 대표는 ‘아직도 제1야당 대표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정도로 강경한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직설적이고 거침 없는 언변도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당 안팎으로 갈등과 충돌도 적지 않았다.
제보 조작 사건으로 수렁에 빠졌던 국민의당을 향한 ‘머리자르기’ 발언이 대표적이다. 국민의당 지도부에게 책임정치를 주문하기 위한 일침이었다고 하나, 집권여당 대표가 내뱉기에는 과한 표현이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발끈한 국민의당이 추경안 처리 반대로 돌아서면서 정국은 꼬여만 갔다. 결국 청와대의 대리사과로 풀렸지만, 추 대표는 본의 아니게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잡음은 당내에서도 불거졌다. 정당발전위원회는 당의 체질을 강화시키겠다는 추 대표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공천권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터져 나왔다. 결국 정발위는 지방선거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중재안으로 사태가 봉합되기는 했지만, 추 대표가 정무적 감각과 소통 능력을 좀 더 발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제 9월 정기국회부터는 청와대로 쏠려 있던 정국의 무게 중심이 국회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 당 안팎에서 우려하는 추미애 리스크를 얼마나 극복하고 문재인정부, 민주당정부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추 대표의 행보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여야 협치 정국 성과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 판세도 결정될 수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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