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석면암 환자 411명 역학조사 보고서 단독 입수
45%가 직업과 무관한 경로
재개발 공사장 인근 거주 12명
석면에 노출된 가족 옷 세탁 10명
도시 재개발 공사현장 인근에 거주했거나 가족의 작업복을 세탁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표적 석면질환인 악성중피종이 발병, 사망한 사례가 국내에서 다수 확인됐다. 석면 광산ㆍ공장 근무자나 인근 거주자 피해 사례가 보고된 적은 많지만, 일상에서 적은 양의 석면 노출만으로 발병한 경우가 역학조사를 통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27일 환경보건시민센터를 통해 본보가 단독 입수한 ‘석면노출 설문지 개발 및 국내 악성중피종 환자의 역학적 특성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순천향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센터장 이용진 교수) 연구팀은 정부 지원을 받아 2011~14년 석면피해자로 인정돼 정부의 구제급여를 받은 이들 중 411명의 악성중피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전체 피해자 중 절반에 가까운 186명(45.3%)은 직업과 무관한 경로를 통해 석면에 노출, 악성종피종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환자 본인은 석면 관련 직장에 근무한 적이 없지만 동거 가족이 근무했다고 응답한 케이스는 모두 49명이었다.
특히 10명의 환자는 석면 자재가 사용된 현장에서 일했던 동거가족이 집으로 가져온 작업복을 세탁하면서 석면에 노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이들이 작업복을 세탁한 것 이외에 다른 석면 노출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10명 중 8명은 석면 관련 근로자의 배우자였으며 1명은 딸, 1명은 동생이었다.
재개발 및 재건축 현장 인근에 거주했다는 이력이 석면 접촉의 유일한 경로로 파악된 피해자도 12명이나 됐다. 그 중 10명이 서울 재개발ㆍ재건축 현장 주변 거주자로 관악구, 노원구, 강북구, 서대문구, 송파구 등에서 재개발 공사 현장의 반경 1㎞ 안팎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간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 관계자는 “석면 섬유는 굵기가 머리카락 5,000분의 1에 불과해 바람을 타고 1㎞ 이상 날아가 인체로 유입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본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서도 석면 피해가 광산ㆍ공장 근로자들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님이 여실히 확인된다. 2011년 1월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후 올 6월까지 정부가 공식 인정해 구제 대상에 포함된 석면 피해자는 총 2,554명으로 이중 최소 1,037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들의 직업이력을 분석해 본 결과 건설ㆍ철거현장 근무 경력자가 558명으로 석면ㆍ일반 광산 근무 경력자(407명)보다 더 많았다. 특히 피해자 4명 중 1명(24.3%ㆍ621명)은 자신이 석면에 노출된 경로나 시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더구나 가장 심각한 질환인 희귀종양인 악성중피종에 걸린 피해자가 869명인데, 이중 44%인 382명이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에 피해자 등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은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됐지만 이미 건축자재ㆍ자동차 부품 등 3,000여종의 공업제품에 사용됐으며 총 사용량은 200만톤 가량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잠복기를 고려할 떄 지난 6월 정부인정 기준 869명이었던 악성중피종 환자가 2045년 1만1,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그간 정부는 대도시 재개발ㆍ재건축이나 2차 석면 피해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광범위한 생활 영역에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광산과 공장 주변으로만 집중해 온 정책 방향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악성중피종’이란
흉막ㆍ복막 등을 둘러싼 중피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을 말한다. 대부분 석면 가루가 호흡기 등을 통해 체내로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는 사실상 모든 악성중피종 환자를 석면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다. 극히 미량의 석면으로도 발병이 가능해 최소 노출 기준이 없으며 그간 학계에 보고된 악성중피종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진단 후 1년 내외였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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