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 독일인들의 추모 속에 지난 7월 1일 엄수된 고(故) 헬무트 콜 전 총리 장례식은 동서로 분단돼 근 반세기 동안 갈등하고 반목했던 독일 현대사의 비극이 종결됐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통일 이후 다시 사반세기가 흐르면서 옛 동ㆍ서독 지역의 격차는 해소된 반면 북부 독일과 남부 독일 간 격차가 벌어지고 이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유럽의 리더 독일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격차와 갈등은 향후 독일 정치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독일의 신(新) 분단’ 이라는 기사에서 북부 독일과 남부 독일간 경제ㆍ사회ㆍ정치적 양극화가 과거 동ㆍ서독 당시의 격차보다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남북 독일 방언의 경계가 되는 독일 중서부 위르딩겐을 중심으로 북부 9개주(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브레멘주, 함부르크주 등)와 남부 7개주(작센주, 튀링겐주, 자를란트주 등)의 인구는 각각 4,060만명과 4,070만명으로 독일을 정확히 양분한다. 하지만 주요 경제ㆍ사회 통계지표는 ‘가난한 북부 독일과 부유한 남부 독일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6년을 기준으로 북부 독일의 1인당 국내총생산(3만4,967유로)은 남부 독일(3만9,481유로)의 89% 수준이었고, 수출액(3,909억 유로)은 70%에 그쳤다. 반면 실업자 규모는 북부(170만명)가 남부(100만명)보다 1.7배 많았다. 16개주 교육 수준 순위를 매긴 결과 북부는 평균 9.4등, 남부는 4.8등이었고 평균 임금이 높은 10대 도시 중 9개가 남부 도시였다. 남부는 북부에 비해 범죄율은 낮았지만 평균 수명은 길어 삶의 질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20세기의 동ㆍ서독 격차가 21세기에는 남북 독일 격차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옛 동독지역이지만 남부에 속하는 도시인 드레스덴(543만명)과, 옛 서독지역이었지만 북부에 속하는 도시인 브레멘(557만명)이다. 인구는 비슷하지만 도로 상태ㆍ도시환경ㆍ실업률 등에서 드레스덴이 양호하다. 드레스덴이 브레멘보다 높은 것은 주택 가격뿐으로 두 도시 사이에서는 더 이상 옛 동ㆍ서독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석탄ㆍ철강산업 중심지였던 북부는 1960년대까지 농업중심의 남부보다 경제적으로 앞섰지만 중공업이 쇠퇴하면서 서서히 몰락한 반면, 남부 독일 지방정부들은 기업가 정신이 강한 주민 특성에 맞춰 ‘관료주의 최소화-높은 인센티브 정책’을 편 결과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분석이다. 덕분에 지멘스나 다임러 등 기술집약적 대기업들이 남부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화하는 남북 격차가 향후 독일의 정치 구도를 흔들 수 있을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예상했다. 전통적으로 집권 기독민주당(CDU)은 남부, 사회민주당(SPD)은 노동계급이 다수인 북부를 표밭으로 삼았지만 양당 모두 ‘집토끼’를 다잡으면서 ‘산토끼’를 끌어오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민당은 남부보다는 북부에서 환영 받는 고세율 정책과 집값이 비싼 남부에서 환영 받는 주택가 상승억제 정책을 전략적으로 병행할 수 있다. 9월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하는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남부 표밭을 확고히 지키고 있지만 압승을 위해 첫 유세를 북부 도르트문트에서 시작하며 북부 공략에 나섰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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