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성 미술감독은 영화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외부에서 들여다본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과 독일 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어쩌면 저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슴 한 켠이 묵직했다. 광주에 대한 죄책감이다. “어떤 영화든 소중하지만 특히 이 영화는, 흥행과 상관없이 참여만 해도 의미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새롭게 부활한 금남로
금남로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다. 세월이 흘러 풍경이 달라진 탓에 로케이션 촬영은 불가능했다. 옛 금남로와 100% 똑같은 세트를 짓기로 했다. ‘광장’의 느낌을 되살리려면 ‘규모’ 그 자체가 중요했다. 힌츠페터가 남긴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당시 자료를 샅샅이 살폈다. “금남로가 조금이라도 허술한 느낌이 든다거나 규모가 작다고 느껴져서 관객이 멈칫하는 순간, 몰입이 깨질 수 있다는 게 제일 두려웠어요.” 세트 부지로 광주의 한 공터를 찾았다. 아스팔트 도로까지 새로 깔았다.
조 감독은 여러 자료 사진 중 한 장을 내밀었다. 어떤 참극이 진행 중인지 미처 알지 못한 채 마치 불구경하러 나온 듯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 모습이었다. “얼굴 표정만 클로즈업해서 보세요. 그냥 보면 축제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러다 전체를 조감하면 군인과 탱크 등이 눈에 들어오죠. 그 순간 풍경이 바뀝니다. 그 느낌을 금남로 안에 담으려 했죠.”
잔인하도록 푸르른 광주
조 감독은 색으로도 미묘한 뉘앙스를 넣었다. 포인트는 녹색이다. 만섭의 택시, 광주의 택시들, 광주로 향하는 길가의 5월 풍경은 모두가 녹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광주를 짓밟은 군인들의 군복, 탱크, 트럭 또한 녹색이다. 하지만 이 녹색이 다 똑같지 않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만섭의 ‘브리사’ 택시만 해도 여러 톤의 녹색으로 여러 번 실제 도색 작업을 한 끝에 고른 녹색이다. “눈에 띄진 않지만 멋스러운 느낌”이 나는 녹색을 고르기 위해서다. “녹색은 대표적인 자연의 색이지만 장르적인 맛을 살리면 광기가 비칩니다. 만섭이 보는, 힌츠페터가 보는, 광주 사람들이 보는 광주가 모두 다르듯, 비슷해 보이는 녹색이 어디서 어떻게 다른 느낌을 주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관광 명소가 된 80년대 풍경
옛 풍경을 찾기 위해 제작팀은 5개월간 전국을 뒤졌다. 만섭이 택시를 고친 정비소, 광주를 빠져 나온 뒤 국수 한 그릇을 먹던 버스터미널, 힌츠페터가 한국 기자를 만난 다방 등은 이렇게 찾은 장소다.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됐다.
“영화에서 미술 작업은 시간과 이야기를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조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술이 이야기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내러티브 안에 녹아든 미술, 그래서 ‘그 영화에선 미술이 좋더라’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미술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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