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폐기 준비 지시” 보도에
트럼프 “상당히 염두에 둬” 인정
재개정 회의 열흘 만에 뒤통수
NYT “업계 회의 안 거쳐 불투명”
“NAFTA와 유사 협상전략” 중론
北 도발 극한상황 동맹균열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카드를 꺼낸 것은 FTA 재개정 논의가 한국 측 반대로 난항을 겪자 특유의 ‘엄포용 협상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란 게 워싱턴의 대체적 기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곧바로 한미 FTA 폐기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한국과의 통상 문제에 대한 불만을 재차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향후 통상 마찰뿐만 아니라 북핵 대응 공조 등 한미 동맹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3일 6차 핵실험에 나선 가운데 한미간 균열만 노출한 셈이 됐다.
태풍 피해지역인 휴스턴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만간 한미 FTA 폐기를 논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상당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에도 한미 FTA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나 백악관의 준비 사항을 두고선 관측이 엇갈린다.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는 “FTA 폐기를 위한 내부 준비는 많이 진척됐으며, 공식적인 폐기 절차는 이르면 다음 주(4일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반면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 사정에 밝은 산업계 관계자를 인용하며 백악관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 전에 밟아야 하는 작업, 예컨대 관련 산업과의 폭넓은 논의 등을 거의 하지 않았다며 트럼프 정부가 실제로 협정을 폐기할 의사가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달 22일 FTA 재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가 한 차례 열린 지 불과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당시 회의에서 미국은 무역 적자 확대를 들어 협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우리 정부는 미국의 상품 수지 적자는 한미 FTA가 원인이 아니라며 미국 무역 수지 적자 요인에 대한 분석을 먼저 하자고 맞섰다. 주미 대사관 측은 “우리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는 상황인데, 그간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갑작스러운 언급이 나와서 진의를 좀 더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첫 협상이 결렬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폐기 카드를 흔든 셈인데,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를 위협한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으로 캐나다와 멕시코는 결국 지난달부터 재개정 협상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협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NAFTA를 폐기하겠다고 재차 위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NAFTA와 유사한 협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FTA 폐기 위협이 FTA 재개정을 노린 엄포용 협상 카드라 하더라도 북한의 도발이 극도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한미간 안보 공조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한미FTA 폐기 추진을 반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만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려는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나온 지 하루가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 도발에 나서면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 됐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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