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뜨거워지는 쟁탈전 <2> 추격전 나선 중국
프놈펜에 거대 주상복합 올리고
꺼스닥엔 38억佛 도시개발 추진
가난한 나라에 거부 못할 투자
일본의 동서경제회랑에 맞불
중국-싱가포르 철도사업도 박차
남진하며 다목적 카드로 활용
미국과의 패권 다툼 포석까지
지난달 1일 찾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왕궁과 사원 등 나지막한 전통 건물들 뒤로 우뚝 솟은 빌딩들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높은 건물들이 선 꺼빗 지역으로 다가가자 일대는 뿌연 먼지로 가득하다. 먼지 바람 속에서도 머지않아 빌딩 ‘숲’이 될 그곳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캄보디아 총리실 농업부문 자문을 맡고 있는 이태영 고문은 “문제는 그 빌딩 숲이 캄보디아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숲이 되는 것”이라며 “이 나라는 캄보디아가 아니라 중국이라 해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대륙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말했다.
인근의 일본계 토요코인프놈펜(Toyoko Inn Phnom Penh)호텔 옥상에서 내려다 본 시내 모습도 마찬가지. 새로 개발된 메콩강의 다이아몬드섬과 인접한 데다 외교부, 환경부 등 중앙부처가 자리잡고 있어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곳에서도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 위한 중국 자본의 터 파기 작업이 한창이다. 이 고문은 “어촌 마을 꺼스닥에는 여의도 면적 10배가 넘는 3,600㏊에 대해 중국의 한 개발사가 38억달러(약4조3,000억원)를 투입해 리조트와 108홀 골프장, 항만과 공항 등을 갖춘 대규모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국의 영향력이 무섭게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무너지는 일본의 아성
수많은 기업들과 천문학적 공적개발자금(ODA)을 통해 동남아를 앞마당처럼 누비던 일본도 중국의 물량 공세 앞에서 잇따라 깨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제3의 도시 반둥까지 142㎞ 구간을 잇는 고속철 사업에서 막판 중국에게 뒤집혔고, 앞서 2010년 베트남에서는 중국의 ‘작업’으로 자국의 고속철 진출이 좌절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들은 베트남 정부가 일본 고속철(신칸센)을 도입해 남북고속철을 건설키로 한 계획안을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해 부결했다고 보도했지만, 외교가에서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이처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서 일본의 아성을 깨뜨리고 있는 중국은 이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잇는 고속철 사업 수주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처음으로 자국 영토밖, 라오스에서 남북철도 공사가 시작됐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을 출발, 싱가포르까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철도 건설 사업의 일부로, 중국ㆍ라오스 접경지부터 수도 비엔티안까지 약 400㎞ 구간에 이뤄지는 공사다. 수담 파워 메콩연구소 혁신ㆍ기술연계성 부문장은 “철도 건설로 중국과 라오스는 물론, 메콩강 유역 국가들이 중국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남진’은 다목적카드
중국의 남북철도 건설 사업은 일본의 동서경제회랑 구축에 맞불을 놓기 위한 성격이 짙다. 일본은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동서 간선도로와 이를 연결하기 위한 터널, 교량 건설을 지원하면서 횡축으로 자국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과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있는데, 중국은 아세안을 종축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공사 현장을 둘러본 이선진 전 자카르타 대사는 “중국은 철로 좌우로 일정 토지(선로 좌우 1.5㎞)에 대해 장기 조차권을 요구해 협상 타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설이 있다”며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동남아를 겨냥한 일본과 중국의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총 공사비 58억달러 중 중국이 40억달러(70%)를 부담하는 사업으로, 토지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건설비를 중국이 부담하는 사업이다.
중국이 이처럼 노력하고 있는 데에는 외교, 안보 측면의 실익과도 맞닿아 있다. 정치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아세안 각국이 두드러진 경제성장으로 내부를 다스려야 하는 상황인 만큼, 중국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박번순 고려대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독이 든 성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패권경쟁의 중심
앞서가던 일본을 중국이 추격함으로써 양국간 경쟁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남진은 미국과의 패권 다툼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을 업고 있는 일본의 대아세안 영향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미국의 입지를 좁힌다는 전략이다. 실제 일본은 아세안에서 중국과의 대결에 미국을 자주 끌어들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동남아에서 한발 빼면서 중국의 대아세안 지배력은 강화되는 분위기다.
단적인 예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난해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필리핀(미국)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중국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말에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와 8월초에 개최된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중국을 더 이상 자극하는 성명은 나오지 않았다.
중국의 대아세안 영향력 배경으로 동남아 거주 화인(華人)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현지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을 일컫는 화인은 전세계 4,300만명에 달하는데, 이 중 3,000만명이 동남아에 거주한다. 2년 전 중국 주도로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중국의 아세안 장악에 모종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이 때문에 역효과를 부른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이 이빨을 너무 빨리 드러냈다’는 것이다. 키쇼어 마부바니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중국과 아세안은 1998, 99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10년간 밀월을 즐겼다”며 “이후 10년은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 있다”고 말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엮여 있는 만큼 앞으로의 관계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프놈펜(캄보디아),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콘깬(태국),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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