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국 농구가 ‘역대급 흥행 전성기’를 누린 시점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여 주인공이 죽자고 따라다녔던 인물이 연세대 농구 선수 이상민(현 삼성 감독)일 정도로 농구 붐이 일었다. 또 농구대잔치,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의 삼각편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길거리로 불렀다.
당시 나이키코리아 마케팅 팀장을 맡았던 김도균(51ㆍ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나이키 미국 본사로부터 ‘한국형 길거리 농구를 만들어 봐라’는 특명과 함께 달랑 A4 용지 2장에 불과한 영문 규정을 받았다. 그리고 스포츠와 게임을 접목한 방식의 3대3 농구 대회를 전국 5개 도시(서울ㆍ대전ㆍ광주ㆍ대구ㆍ부산)에서 개최했다. 1994년 첫 대회 때 출전 팀만 3,400여 팀, 참가 인원 1만3,600명에 달하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다. 그렇게 3대3 농구는 한국 농구의 풀 뿌리가 됐다.
23년이 흘렀다. 올해 3대3 농구가 2020 도쿄 하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하나의 문화로만 여겨졌던 종목이 제도권에 들어가자 한국에 처음 3대3 농구를 도입한 김도균 교수는 “꿈이 이뤄졌다”고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하지만 한국 3대3 농구는 걸음마 단계다. 이미 유럽에서는 3대3 농구가 주요 스포츠로 자리잡은 지 3년째 됐고, 일본도 세미프로리그를 출범한 상태다. 농구 최강국 미국 역시 올해 6월 프로리그 ‘빅3’로 닻을 올렸다.
한국 3대3 프로리그 출범을 위해 김 교수가 다시 한번 발 벗고 나섰다. 7월21일 한국3대3농구연맹 창립식을 갖고 초대 회장으로 부임했다. 지난 4일 경기 용인의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내년 5월 프로리그 출범이 목표”라며 “우리는 다른 국가에 비해 한 박자 늦었지만 관심 있는 기업도 많고,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농구 인기는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식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빠른 시간(10분)에 승부를 내고 공격 시간(12초)도 짧은 3대3 농구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로 인기를 되살릴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농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갈 길을 잃었다”면서 “스포츠로만 존재하는 시대는 끝났고, 앞으로 무엇과 결합하느냐가 중요하다. 3대3 농구는 음악, 그리고 패션(옷), 춤과도 결합을 했다. 경기 시간도 짧고 몰입도도 높아 유튜브나 SNS에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 3대3 농구는 기존 5대5 농구와 달리 아시아에서도 변방에 있다. 그러나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대한민국농구협회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주최 대회 ‘월드투어 우쓰노미야 마스터스’를 참관한 방열 농구협회장은 “3대3 농구 잠재력은 배구의 비치발리볼이나 축구의 풋살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국에서 3대3 농구의 장이 펼쳐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허재 감독이 이끈 남자 농구 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로 선전하면서 농구 분위기가 뜨고 있으니까 3대3 농구도 올림픽과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맞춰 자리를 잡는다면 한국 농구가 살아날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올해 프랑스와 일본 대회에 두 차례 대표팀 선수들이 나가 우리 현주소를 파악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려면 추진체가 필요한데, 연맹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단 연맹은 큰 숙제를 했다. FIBA 규정에 맞춘 고정 3대3 농구 전용 코트(코트M)를 세계 최초로 경기 고양 스타필드 내 스포츠몬스터 5층에 설치했다. 코트M은 오는 11일 공개할 예정이다. 앞서 세계 대회에 출전할 대표팀을 선발할 때는 전용 코트가 아닌 체육관에서 진행했다. 3대3 농구는 5대5 농구와 코트나 사용하는 공도 다르고,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펼쳐지는 만큼 환경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그 동안 맨땅에서 뛰어 논 것이나 마찬가지다. 축구로 치면 맨땅에서 국가대표를 뽑았다”며 “스포츠는 환경과 용품의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국가대표 이승준(39)의 높은 상품성에 주목하면서 “벌써 글로벌 스타”라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모두 가능해 어떤 대회를 나가든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실력과 외모도 모두 갖췄다”고 극찬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1990년대 3대3 농구로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의 놀이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궁극적으로 한국 농구 전체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올림픽 출전이라는 큰 꿈을 안고 갈 필요가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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