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 가수일까, 투사일까. 사람들이 이승환을 바라보는 상반된 이미지다. 이승환은 지난해 연말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이 드러나자 자신이 설립한 연예기획사 드림팩토리클럽 건물에 ‘박근혜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최근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풍자의 날을 세웠다. 신곡 ‘돈의 신’에서다. ‘아, 자원을 다스리며 물을 가두시니’라니. 가사에서 엿볼 수 있듯 이승환은 작정하고 이 전 대통령이 추진한 주요 사업들을 꼬집는다.
이승환의 정치 풍자는 어디까지 갈까. “그 부분에 고민이 많아요.” 이승환은 6일 오후 서울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연 ‘인디 음악 활성화 프로젝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승환은 “그런(정치적) 행동들에 가수란 이미지가 잠식”돼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이)제 말을 들으려 하지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최근 들어 고민이 커졌다. 이승환은 농담을 섞어 “‘돈의 신’을 내면서 그분(이 전 대통령)의 악의 장벽에 내가 쓴 가사대로 묻혀 버렸다”는 자기 진단(?)도 했다.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달걀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한 일이지만 지치기도 한다”는 고백도 했다.
대신, 후배들 지원에 대한 열정은 더 뜨거워졌다. 이승환은 CJ문화재단과 손잡고 인디 음악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의 판을 키웠다. 인디 뮤지션을 선정해 2,000석 규모의 큰 무대에 세우는 일이다. 2015년부터 홀로 해 온 인디 뮤지션 소극장 대관료 지원 프로젝트 ‘프리 프롬 올’보다 규모를 키웠다.
이승환은 첫 실험의 파트너로 록밴드 아이엠낫을 택했다. 아이엠낫은 내달 21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공연한다. 관료는 이승환과 CJ문화재단이 “반씩” 지원한다.
인디 뮤지션이 2,000여석 규모의 공연장을 채우기란 쉽지 않다. 공연으로 잔뼈가 굵은 이승환도 모를 리 없다. 그도 프로젝트 이름을 스스로 ‘무모한 도전’이라고 정했다.
팔을 걷어 붙인 이유는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으로 서울 홍익대 인근 라이브 공연장이 점점 문을 닫는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큰 판’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이승환은 “많은 인디 가수들이 알려지고 싶어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가고 싶다는 농담을 많이 한다”며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내가 큰 판을 만들고 이 친구(인디 음악인)들이 화제성을 갖고 성공하게 된다면 그게 상징적인 깃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 큰 무대를 발판 삼아 ‘나만 아는 뮤지션’을 ‘모두가 아는 뮤지션’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바람이다.
이를 위해 이승환은 후배들의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공연 장비도 지원한다. 아이엠낫과 합동 무대도 선보인다. 이승환은 “내가 누군가에게 선의의 공연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그 의미를 간직해서 성공한 뒤 또 다른 후배를 위해 선의를 베푸는 무대를 만드는 게 내 큰 그림”이란 말도 했다. 그의 도전은 현재까진 ‘무모한 도전’까진 아니다. 최근 티켓 예매를 시작, 2000석 중 660여 장의 표가 팔렸다.
이승환은 ‘무모한 도전’ 프로젝트를 지속할 의지를 보였다. 그는 “국정교과서 반대 콘서트 이후에 가수의 꽃인 행사도 일 년에 하나로 줄어든 상황”이라면서도 “CJ문화재단에 읍소하고 있고 그 분들이 저와 함께 반반으로 (대관료를) 부담해준다면 계속할 의향이 있다”며 웃었다.
아이엠낫은 이승환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두렵다. 아이엠낫은 “두려운 마음이 커 이승환 선배에게 ‘우리가 대단한 밴드가 아니고 쉽지 않은 게임’이라고 말씀 드리자 격려해주셨다”며 “멋지게 공연을 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이승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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