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생존배낭 개념 전파
유통기한 긴 통조림 등 도움
조리 필요한 라면은 부적합
방사능 농도 옅어질 때까지
길게는 14일간 버텨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의지’
재난 닥쳐도 삶은 계속된다
“특전사 복무 때 강릉 무장공비 작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등을 지켜보면서, 이런 재난 상황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죠. 최소한의 지식과 대비가 필요한데 알려주는 곳도, 정리된 자료도 없어 직접 연구에 나선 게 시작이에요.”
우승엽(44)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특전사 제대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 전업으로 실전 생존법을 연구하고 나선 도시재난 생존 전문가다. 국내에는 낯선 생존배낭 개념을 7,8년부터 알렸고, 몇 해 전에는 이 같은 노하우를 토대로 ‘재난시대 생존법, 도심형 재난에서 내 가족 지켜내기’(들녘) 등 안내서를 펴냈다. 7년 전 개설해 그가 운영하는 ‘생존21-도시재난안전포럼’ 카페(cafe.daum.net/push21)에서는 1만 9,000명의 회원들이 생활 밀착형 생존주의 전략 등 정보를 주고 받는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북한이 이른 새벽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일본 열도와 한반도가 충격으로 들썩이던 날이다.
-북한 도발이 심상찮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 회원들이 공습 상황에서 생존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고 받았다. 확실히 피부에 와 닿는 경험이 있어야 경각심이 커진다. 생존배낭도 7,8년 전부터 카페 등에서 소개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국민적으로 관심이 커진 건 많은 분들이 지난해 경주 지진을 체감한 이후다.”
-국민들 대비가 안일한 수준인가.
“불감증에 가깝다. 막연히 안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해 전까지만 해도 지진 관련 자료나 대처법을 공유하면 시큰둥한 반응이 있었다. 전쟁 대비도 마찬가지다. 나쁜 일을 말로 하면 실현된다는 식의, 즉 ‘뱀 나오니 휘파람 불지 말라’는 태도가 적지 않고, 객관적 사실을 말해도 왜 위기와 공포를 조성하냐고 기분 나빠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 선거철에 으레 오는 북풍이 또 왔나 보다 하는 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대처법, 비상품 등을 준비한 분들은 ‘나는 어느 정도 방법도 알고 준비도 됐으니까’라는 식의 자신감으로 그다지 휘둘리지 않는다.”
-생존배낭은 어떻게 싸야 이상적인가.
“처음 관심이 생긴 분들은 대개 한 번에 갖춰진 패키지나 비싼 외제품을 사고 싶어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다 필요 없다. 불필요하게 고급형이거나 비상식량이 입에 안 맞는다. 20년간 보관 가능한 비싼 외제 비상식량도 필요 없다. 참치 캔 유통기한이 기본 7년이고 단백질 원이라 식량으로 좋다. 근처 마트나 1,000원 숍에서 꼭 필요한 목록들을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 싼 배낭 하나에 식수, 사탕, 참치캔, 손전등, 주머니칼, 라디오 등을 챙기면 된다.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학교에서도 생존배낭 싸는 법을 알려준다. 국내에도 과거보단 정보가 많이 늘었다.”
-기타 비상식량으로 좋은 것은.
“배낭에는 포도당캔디 등 사탕, 초콜릿류를 넣어두는 것이 편하고, 배낭 외에 가정에 갖춰두는 비상식량으로는 시리얼, 즉석 분말 스프, 전지분유(가루우유), 즉석 식품, 건빵, 참치캔, 국수 등이 있다. 쌀은 2ℓ 페트병에 3병만 보관해도 한 사람이 열흘 먹을 수 있다. 흔히 라면을 떠올리지만, 유통기한이 짧고 조리가 필요한 라면은 그다지 좋은 비상식량이 아니다. 면을 보관하겠다면 차라리 마른국수를 페트병에 담아 두는 것이 좋다. 유통기한도 훨씬 길고 미지근한 물에 불리면 먹을 만하다.”
-평소 가정용, 직장용, 차량용 배낭을 따로 두라고 조언하던데.
“대부분 출근해서 일터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 때도 도쿄는 진원지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전기가 끊겨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신호등이 꺼지니 난리가 났다. 차도 안 다니고 집까지 가야 하는데 딱딱한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와 몇 시간씩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약식으로 구비한 생존배낭과 운동화를 두면 적어도 집까지 물이나 열량 부족 없이 갈 수는 있다.”
-최근 북핵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다.
“1~4등급 대피소 중 대부분 국민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2~4등급인 만큼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핵 폭탄이 떨어져도 일단 지하로만 갈 수 있다면 생존 확률은 상당히 올라간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도 폭발 지점 근처 은행 지하에 대피했던 사람이 생존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미사일이 날아오는 (북측) 방향을 쳐다봐서는 절대 안 되고 폭발의 섬광, 열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폭발 반대방향으로 엎드리되 땅에 배가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 등을 알아두자. 또 폭발 이후 낙진이 비의 형태로 떨어질 수 있는데 절대 이런 물을 마시거나 몸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단 지하로 대피했다면 짧게는 2일 길게는 14일 간, 즉 방사능의 농도가 옅어질 때까지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이 2주를 버틸 깨끗한 식수 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기타 미사일 공습은 어떻게 대비하나.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더 위험한 것이 공습 때 도시화재다. 자동차, 가스배관, 주유소 등에 불이 붙으면 화재가 번지고 물이 끊기면 끌 수도 없고, 산소는 급격히 빨려 들어가 질식 위험이 커진다. 2차 대전 때 독일 드레스덴 폭격, 일본 도쿄 폭격에서 미군이 커다란 포탄 대신 작은 소이탄 다수를 쓴 것도 불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다. 평소부터 화재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익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주로 하는 계획 중 비현실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외나 산으로 가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큰 재난이 터지면 (핵 폭발이 아닌 이상) 길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엉망이 된 도로에 가족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면 아수라장이 돼 멀리 떠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평소 강조하는 것이 가능하면 집에서 문 닫고 버티라는 것이다. 요즘 건물 튼튼하다.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래서 식량, 물을 갖추고 집 안에 있던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수단 등을 알아둬야 한다.”
-알아둬야 할 정수 방법이 있을까.
“미국연방재난관리청이 공지하는 정수 방법 중 오래된 물을 페트병에 넣고 햇빛에 8시간을 두면 자외선에 살균이 되고, 오염된 물 1리터에 락스 4방울 떨어뜨리고 30분 기다리면 살균이 돼서 마실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선 락스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권고하지는 않는다. 또 정전으로 집안 내의 정수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정수기 필터만 빼서 고무장갑과 연결해 집 안에 있던 물을 부어 쓰면 정수가 된다. 영화에서처럼 소변을 마시는 건 설사 위험이 있다.”
-기타 유용한 생존 기술은.
“생존가방을 준비해두고, 대피소를 확인해두고, 연락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웬만한 재난 상황에서 두루 쓸모가 있다. 그 외 태풍이 올 경우 망사테이프 등을 유리창에 붙여 유리 파손을 막는 등의 각종 자연재해 대처 방법을 찾아 익혀두면 좋다.”
-개인 은신처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은신처는 크게 신경 안 쓴다. 일단 완벽한 은신처는 없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 공간에 너무 매달리면 떠나야 하거나 못 오게 될 때 더 비참해진다. 큰 돈을 들여 은신처를 만들기 보다 관련 지식, 기술을 알아두는 게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일터지면 다 죽어’라는 분들에게….
“주한미군은 한반도 유사 시에 항공기와 선박을 통해 장병 가족, 즉 미국 시민권자인 민간인을 일본으로 탈출시키는 훈련을 매년 두 차례 한다. 심지어 그들의 애완동물을 위한 공간과 사료 등에 대한 고민까지 한다. 하지만 더 심각해야 할 우리 정부와 국민은 유난 떤다는 생각에 대책이 허술한 상황이다. 정부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서야 할 측면이 적잖고, 동시에 국민들도 ‘이런 건 정부 몫이야’라 고만 미룰 사안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자세는.
“생존의지다. 이것저것 사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물품만 그럴 듯하지 생존의지도 없는 분들이 있다. 자기 기준이 없고 아는 게 없을수록 엉뚱한 정보에 휩쓸릴 수 있다. 카페 회원인 한 경영대 교수님은 유일한 취미가 생존기술 공부다. 비상식량이나 도구 등을 재미로 사 모으고, 위기 대처법을 꾸준히 공부한다. 무겁고 심각하게 여기며 정작 대비는 안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취미 삼아서라도 정보를 익혀두는 게 훨씬 낫다. 재난이 닥쳐도 삶은 계속된다.”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