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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아픈 곳에는 ‘연분홍 카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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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아픈 곳에는 ‘연분홍 카메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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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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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집단 연분홍치마 소속 넝쿨(왼쪽부터)ㆍ한영희ㆍ이혁상 감독. 협업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연분홍치마는 신작 ‘안녕 히어로’ 때부터 연출자에게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제작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영상집단 연분홍치마 소속 넝쿨(왼쪽부터)ㆍ한영희ㆍ이혁상 감독. 협업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연분홍치마는 신작 ‘안녕 히어로’ 때부터 연출자에게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제작방식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열네 살 중학생이 된 현우는 학교에서 준 생활기록부를 쓰다 고민에 빠졌다. 아빠 직업란에 무얼 써야 할까?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해고자, 아니면 무직? 현우와 머리를 맞대고 빈칸들을 들여다보던 아빠는 머쓱해진다. “아빠도 고민된다, 사실.” 현우 아빠 김정운씨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다. 수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현우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는 아빠를 안쓰러워하면서도 그런 아빠의 용기를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아빠는 영웅 같아요.”

‘안녕 히어로’(7일 개봉)는 해고자 아빠를 통해 세상을 만나게 된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현우네 집과 투쟁 현장을 오가며 3년간 가족의 일상을 기록했다. 노동문제를 성장영화로 접근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상집단이자 인권단체인 연분홍치마 소속 한영희 감독이 만들었다. ‘안녕 히어로’는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7번째 작품이다.

연분홍치마에는 한영희 감독을 비롯해 김일란, 이혁상, 넝쿨, 변규리 등 다섯 감독이 몸담고 있다. 2004년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로 시작해 2005년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다룬 ‘마마상’을 첫 결실로 내놨다. 이후 ‘3XFTM’(2008)과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 등 ‘성소수자 다큐 3부작’을 선보였고,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두 개의 문’ (2011)으로 7만3,000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연분홍치마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스태프가 돼 공동작업을 한다. 한 사람이 작품 연출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조연출, 기획, 프로듀서, 촬영, 편집 등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연분홍치마 사람들을 최근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작업실에서 만났다. 한영희 감독을 도와 ‘안녕 히어로’의 구성과 촬영 등을 맡은 이혁상 감독과 넝쿨 감독이 함께했다. 이혁상 감독은 ‘종로의 기적’과 ‘공동정범’(2017)을 연출했고, 넝쿨 감독은 지난 겨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미디어팀장으로도 활약했다.

쌍용차 해고자 아빠를 통해 세상을 만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
쌍용차 해고자 아빠를 통해 세상을 만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

소년은 자란다

연분홍치마가 현우네 가족을 만난 건 2012년 11월이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송전탑 농성을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카메라는 평택과 서울 대한문 농성장을 오갔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는데 이 상황을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 농성장에서 만난 현우 아빠 김정운씨의 고민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 “해고자들의 투쟁은 그 가족 모두의 투쟁이기도 해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한영희)

2013년 열세 살 때부터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한 현우는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하고 영화가 끝날 무렵엔 교복이 작아질 정도로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쌍용차 해고자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처 받고, 생계를 떠안은 엄마에 미안해 하는 현우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듬는다. 2014년 11월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온 날, 뉴스를 보던 현우는 카메라를 향해 묻는다. “저 재판이 끝이에요?” 카메라는 끝내 답하지 못한다. “2009년 파업으로 아빠가 구속 수감됐을 때 현우가 아빠랑 편지를 주고 받았대요. 사실 현우는 아빠의 글씨를 못 알아봐서 내용을 잘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꼬박꼬박 답장을 썼던 거예요. 현우는 그렇게 속깊은 아이였어요. 그래서 더더욱 쌍용차 문제를 잘 전달해야겠다 생각했죠.”(한영희)

2015년 쌍용차는 해고자들의 단계적 복직에 합의했다. 애초 해고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파업에 동참했다가 해고된 김정운씨는 지난해 2월 7년 만에 복직했다. 현우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현우의 시선이 넓어졌다는 게 뜻 깊어요. 아직 남아서 투쟁하고 있는 해고자들도 아빠와 똑 같은 영웅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승리의 경험이 중요해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니까요.”(한영희)

“다큐멘터리가 주인공들에게 행복한 기억만 남기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 현우가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도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이혁상)

“상반기까지 복직 희망자 전원을 복직시키겠다는 사측의 약속이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이 영화가 쌍용차 문제를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넝쿨)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위)과 용산참사 생존자의 삶을 담은 ‘공동정범’.
용산참사의 진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위)과 용산참사 생존자의 삶을 담은 ‘공동정범’.

연분홍치마가 걸어갈 길

연분홍치마 사람들은 인권활동가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연분홍치마의 카메라가 있다. 기록이 우선이고, 현장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아이템이 발전하면 영화로 만든다. “워낙 역동적인 한국사회 덕분에” 연분홍치마의 필모그래피는 성소수자 인권문제와 노동현실, 국가폭력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때때로 “조직의 부름”도 받는다. “‘3XFTM’과 ‘레즈비언 정치도전기’가 나온 뒤였는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영화 제안을 받았어요. ‘연분홍치마의 게이인 네가 하면 어떠냐’고 해서 제가 ‘종로의 기적’을 연출하게 됐죠. ‘두 개의 문’ 제작에 참여한 인연으로 그 후속인 ‘공동정범’ 공동연출도 하게 됐고요.”(이혁상)

넝쿨 감독과 변규리 감독이 새로 준비 중인 영화도 “현장 경험”과 “조직의 부름”에서 싹을 틔웠다. “지난해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홍보영상 제작을 부탁 받았어요. 영상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작업으로 이어졌죠. 성소수자를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은데, 연분홍치마가 쌓아 온 신뢰 덕분에 어디서든 환대 받으면서 일하고 있어요.”(넝쿨)

이들은 그 신뢰감을 무거운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감독이란 이름이 갖는 영향력에 기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성찰”(한영희)하고 “영화에 담길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와 인권 감수성을 벼르려”(넝쿨) 노력한다. “밤에는 인권활동가에서 퇴근”(넝쿨)하거나 “외부활동을 잘 안 하는”(이혁상) 것도 또 다른 자기 관리 방법이라고 농담도 보탠다.

영상집단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성소수자 다큐멘터리 3부작 ‘3XFTM’(왼쪽부터)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영상집단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성소수자 다큐멘터리 3부작 ‘3XFTM’(왼쪽부터)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여느 독립영화들처럼 제작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영화제 기금 지원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 한 사람이 영화 작업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13년을 버텨왔다.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얼마 전에는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이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어서 뭐하나, 우리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가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이혁상) 연분홍치마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도 “건강검진 받았냐”는 얘기로 인사를 나눈다면서, 기자에게도 건강 관리를 당부했다.

다음달 2일까지 진행되는 후원 프로젝트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1인당 120만원씩 월 600만원만 있으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뜻이다. 28일엔 서울 신촌 하이델베르크하우스에서 후원 주점도 열린다. 내년 1월 ‘공동정범’ 개봉을 위한 크라우드펀딩도 하고 있다. “응원 보내준 관객들과 동료 활동가에게 큰 고마움을 느껴요. 선뜻 카메라 앞에 나서준 분들에 대한 무한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활동할 겁니다.”(한영희)

글ㆍ사진=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4일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작업실에서 만난 넝쿨 감독(왼쪽부터)과 한영희 감독, 이혁상 감독. 연분홍치마는 활동가들의 안정적 활동과 영화 제작 및 상영 활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일 서울 서교동 연분홍치마 작업실에서 만난 넝쿨 감독(왼쪽부터)과 한영희 감독, 이혁상 감독. 연분홍치마는 활동가들의 안정적 활동과 영화 제작 및 상영 활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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