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기관지를 자처했던 격월간 시대정신이 지난 5월 무기한 휴간을 선언하면서, 뉴라이트의 몰락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누린, 실력 이상의 호사를 생각하면 몰락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란 시각이 보편적이다.
‘박근혜 탄핵’을 두고 흔히 ‘보수의 궤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돌아오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자유한국당이 107석 거대 야당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보수는 어떤 모습을 띨 것이며,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최근 발간된 계간지 ‘문화과학’ 가을호는 이 주제를 다룬 ‘한국 우익의 형성’이란 특집을 내놨다.
뉴라이트, 오직 ‘북한 팔이’ 권력욕망
6편의 글 중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의 ‘전향우익 분석: 북(北)에 근거한 프레임과 권력욕망’이 가장 눈길을 끈다.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의 전향은 흔히 “연옥을 통과하는 고통”(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이란 표현에 집약된다.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뒤 엄청난 고뇌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존재론적 결단에 도달한 것처럼 포장하는 수사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이들의 전향이 연옥의 고통이긴커녕, ‘북한 팔이’를 매개로 한 권력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상징적 인물은 김문수 전 경기자사다. 1994년 그의 민주자유당 입당 이후 민중당 출신 차명진, 노동운동가 출신 임해규, 박종철이 목숨 걸고 지킨 박종운 등이 뒤따랐다. 신지호ㆍ홍진표ㆍ최홍재 등이 줄줄이 뉴라이트, 자유주의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보수정권 창출 성공과 함께 정치권에 들어왔다. 운동권 시절 ‘북한 팔이’였던 이들은, 제도권 진입 이후에도 ‘북한 팔이’에 나섰다. 반대 세력을 종북좌파로 몰아붙여 심리전 대상으로 삼는, 사실상의 ‘내전’을 벌였다.
김 교수는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이들의 ‘북한 팔이’는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과 최홍재를 사례로 꼽는다. 이들의 논리는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종북좌파가 없어졌으니, 이제 ‘종북몰이 극우정당’ 자유한국당이 해체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또 다시 북한을 근거로 한 종북몰이 청산 프레임으로 보수 내전을 유발하여 보수 내 주류화라는 권력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김 교수의 의문 어린 전망이다.
‘이념’을 버려야 보수가 산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보수에 대한, 더 정확히는 ‘합리적 보수’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정말 합리적인가라는 질문과는 별개로, 지난 대선 당시 처절하게 내몰리던 유승민 후보에서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그 열망의 반영이다. ‘합리적 보수는 언제 올까’라는 글에서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는 이 문제를 탐구한다.
일단 ‘자유주의’, ‘뉴라이트’를 팔고 다녔던 기존 세력은 후보에서 탈락이다. “유신체제 친화적이던 유교자본주의론은 일찍이 파산했고,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아카데미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를 성큼 넘어섰다.” 그렇다면 바른정당은 가능할까. 조 교수는 유보적이다. 일견 사회정의, 인권, 사회적 약자 배려 등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말 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서구 보수주의 역사를 일별한 뒤 ‘합리적 보수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주의의 합리성이란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이념을 절대화, 형이상학화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합리적이라는 의미였다.” 보수 세력이 주도한 미국의 노예해방, 독일의 실업보험 추진, 영국의 개혁법안 포용, 프랑스의 알제리 정책 선회는, 합리적 보수란 어떤 우주의 보편 법칙이나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집단이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실용적인 결정을 내리는 이들임을 잘 보여준다. 조 교수는 “이 실용주의를 버리고 자유이념의 투사가 되는 순간부터 합리적 보수주의의 자리는 이미 소멸”한다고 지적한다. 합리적 보수가 되기 위해선 “보수주의라는 어휘,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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