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 잔디 마당에서 ‘G70·서울 2017’ 콘서트를 열고 신차 G70을 공개했다.
이날 공연에는 그웬 스테파니, 앤드라 데이, 씨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 열띤 무대를 만들었다. 언뜻 신차 출시를 기념한 대규모 콘서트처럼 보이나, 그 이면엔 G70의 현주소와 방향성 등이 담겨 있었다.
출연한 세 가수의 공통점은 모두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가수, 이른바 걸크러시 색체가 짙은 가수들이다. 씨엘은 섹시하고 파워풀한 몸짓으로 무대의 시작을 뜨겁게 달구었다. 앤드라 데이의 호소력 짙은 소울 보이스는 청명한 초가을 저녁의 하늘을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헤라(HERA)와 애플(APPLE) 광고를 통해 익히 알려져 친숙했다. 앤드라 데이는 지난해 팬들의 요청으로 첫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그웬 스테파니였다. 그녀는 지난 4월 갑작스러운 고막파열로 예정됐던 공연을 전면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다 컴백 무대로 한국을 선택했다. 1992년에 결성된 그룹 ‘노 다웃(No Doubt)’의 보컬로 유명해진 그웬 스테파니는 도발적인 퍼포먼스와 특색 있는 목소리로 ‘제2의 마돈나’라고도 불린다. 1969년생인 그녀는 앞서 공연했던 후배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약 한 시간 동안 뿜어냈다.
G70의 목적은 명확하다. 20~30대, 그중에서도 여심을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데뷔 무대로 모터쇼 대신 콘서트를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자동차 영업 현장에 있는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자동차의 실제 구매 결정은 여성이 많이 한다고 한다. 결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 인구가 늘면서 자동차의 여성 구매자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가정에서도 자동차와 같은 고관여 제품 구매 결정은 주로 여성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이 그 목적에 양적으로 부합했는지는 석연치 않다. 현대차는 이날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다고 전했지만, 실제론 스탠딩석만 꽉 찼을 뿐 그 외 공간은 여유롭다 못해 허전했다. 1만 명이란 숫자는 현대차가 계획한 ‘5,000명과 동반 1인’이라는 초청 인원이다.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인터넷 중고거래 게시판에는 초청권이 매물로 나오기도 했고, 주위에서도 사정상 못 가는 사람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연장 입구엔 카운터로 입장객 수를 일일이 확인하는 스태프가 있었지만, 현대차는 정확한 입장객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운영상 형평성에 관한 지적도 있었다. 사전에 고지된 반입 금지 물품에 돗자리는 제외라고 적혀 있어 많은 이들이 돗자리를 가져왔다. 하지만 공연 시작 약 한 시간 전에 입장한 사람들에 한해서, 그것도 울타리가 있는 가장 뒤쪽 라인에만 돗자리를 펼 수 있도록 허락됐다. 이 내용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또한, 그 이후에 입장한 관객이 돗자리를 펴려고 하면 운영 요원이 달려와 제지했다. 다른 관람객의 동선에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들이 현장에서 나중에 지정한, 관람객의 동선과 전혀 상관없는 가장 뒤쪽 자리에 펴려고 하는 ‘돗자리 관객’에게도 스태프들은 하달받은 지침과 원칙을 고수했다. 옆에서 돗자리를 들고 멍하니 서 있던 한 중년 부부는 끝내 자리를 뜨고 말았다. 그런데 스탠딩석을 제외한 ‘돗자리 공간’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여유로웠고, 심지어 뛰어다니는 관객도 있었다. 1만 명이 왔다고 하기엔 비는 자리가 너무도 많아 보였다.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키워드는 ‘미국’이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엔 G70 대신 기아 스팅어가 전시됐다. 아직 제네시스는 유럽에서 ‘독일 3사’의 차와 경쟁하기엔 시기상조란 분석이다. 유럽에선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는 반면, 미국에선 진출 1년 만에 1만 대가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다. ‘G70·서울 2017’에 등장한 가수들도 모두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 그웬 스테파니는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받았고, 앤드라 데이 역시 소울 음악 천재인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비견될 정도로 주목받는 신인이다. 씨엘은 투애니원 이후 주로 미국에서 솔로로 활동했는데, 지난해엔 국내 여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기도 했다. 씨엘은 현재 미국에서 곡을 만들며 앨범 준비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공연 장소와 타이틀은 서울이었지만, 메시지의 타깃은 미국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공연 시작을 장식한 씨엘과 공연 중간 G70과 함께 연설문을 발표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말 이외엔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약 2시간 30분에 달하는 공연 동안 어떠한 번역이나 통역도 없었다. 제네시스가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건 알겠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국인 관객을 초청한 공연이라면 한국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웬 스테파니가 노 다웃 시절의 히트곡 ‘돈 스피크(Don’t speak)’의 후렴구를 부를 때 스탠딩석의 관객에게 마이크를 건넸지만, 그 열정적인 관객들도 ‘돈 스피크’ 다음의 영어 가사를 몰라 침묵했다.
공연이 끝난 뒤, 잔디 광장 밖에선 G70이 베일을 벗었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차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실내를 둘러보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시승과 가격 문의가 이어졌다. “예쁘다”, “멋지다”, “사고 싶다” 등의 찬사가 들려왔다. 현대차가 한국 소비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좀 더 깊이 있게 헤아려주길 바란다. 얼마 전의 ‘로킹 1000(Rockin' 1000)’ 사태처럼 열정 어린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 국내에서 존경받는 기업이 국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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