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스 바자르–테크나프 로힝야족 피란 행렬
국도1호선, 식량ㆍ식수 공급받는 생명선
폭우 속 검문소에 막혀도 도로변 못 떠나
차량 속도 늦추자 난민들 사탕ㆍ과자 요구
17일 오전 로힝야 난민 캠프들이 인접한 콕스 바자르와 방글라데시 최남단 테크나프를 연결하는 국도1호선 풍경은 전날보다 무거웠다. 밤새 쏟아진 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해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던 터였다. 그 풍경은 날씨 탓은 아니었다. 하루 사이 국도에 듬성듬성 하지만 새로 설치된 검문소들이 북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발을 붙들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군경은 미얀마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톰톰(지붕이 있는 삼륜 오토바이)을 잡아 세우고 안을 들여다봤다. 통역 안내를 맡은 안서(25)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족들이 난민 캠프로 지정한 지역 밖(북쪽으로)으로 움직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를 길가로 붙이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며 말렸다. 며칠 전 외국 기자 둘이 방글라데시 당국에 체포된 상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인과 경찰이 이렇게 많지 않았고, 또 이처럼 북쪽까지 와서 길목을 버티고 있지도 않았다. 삼엄한 풍경은 쿠투팔롱 난민 캠프까지 남쪽으로 가는 길에 두 차례나 더 목격했다.
목적지는 콕스 바자르에서 남쪽으로 110㎞가량 떨어진, 테크나프에서도 가장 남단인 몽다우. 테크나프의 아리가칼리파라 마을까지는 차로 닿을 수 있지만 여기서부터 한참을 걸어간 후 이름 없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나프강 지류를 따라 이동해 다시 톰톰을 타야하는 길이다. 테크나프에서 몽다우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만 몰려드는 난민 때문에 폐쇄됐다고 한다. 덕분에 꼬박 다섯 시간을 달려야 했다. 몽다우는 미얀마와는 나프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국경마을. 난민을 지원하고 있는 한 이슬람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곳을 통해서만 하루에 로힝야 난민 2,000~2,500명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온다.
비가 내려 전날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난민들이 비를 피하자면 어디든 들어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민들로 북새통이었던 국도1호선 정체는 덜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셀 수도 없는 난민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비를 맞고 있었다. 더러는 풀숲에 주저앉아 자고 있었고, 손바닥을 얼굴 높이로 올린 채 지나는 차량들에 시선을 주는 이들도 있다. 국도1호선 주변이 거대한 난민촌이 됐다. 길은 더 막혔다. 안서는 “그야말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 도로를 벗어나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도1호선은 이들에게 생명선과 다름없다. 도로를 통해 식량과 식수, 옷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먼저 식량을 받기 위해 북으로, 북으로 올라오다 이제는 검문소에 가로막힌 상황. 북쪽으로 더 올라갈 수 없어도, 길 곁을 떠날 수는 없다. 차로 지나는 방글라데시 현지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창을 열어 과자와 땅콩을 그들에게 던져준다. 이들 차량이 잠시 속도를 늦추면 일대의 난민들이 몰려든다. 비가 내린 뒤라 그랬는지, 마른 헌 옷을 싣고 온 트럭 주변으로는 전날보다 많은 손이 뻗어왔다. 콕스 바자르 남쪽으로 위치한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난민만 따져도 25만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지난 3주 동안 40만명 가량이 국경을 건너왔다. 이들은 테크나프에서부터 검문소 바로 남쪽까지 국도 1호선 중 약 80㎞ 구간에 늘어선 듯 했다.
난민 캠프 건설에도 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였다. 길가 공간이 좀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대나무 묶음이 놓였다. 간간이 위태로울 만큼 많은 대나무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트럭들도 보였다. 안서는 “이곳에도 대나무가 많지만 캠프를 짓느라 부족해서 치타공 근처 샤포르디프의 숲에서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쿠투팔롱 난민 캠프를 지나 남으로 더 내려가자 터를 닦은 뒤 대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있거나, 그 위로 천막을 두르는 난민촌 건설 현장이 보였다. 콕스 바자르에서 남쪽으로 75㎞ 떨어진 나야파라 난민 캠프 인근. 이곳에선 유난히 사람들을 가득 싣고 올라오는 트럭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유엔이 지정한 또 다른 공식 난민촌으로 현재 2만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나야파라 캠프에서 만난 모하마드 아윱(36)씨는 “트럭에 탄 사람들은 모두 로힝야족”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동쪽으로 미얀마 라카인주와 맞닿은 폭 1㎞의 나프강을 사이에 두고 있어 난민들이 많이 넘어오는 입국 통로이다.
테크나프의 도로는 온통 진흙으로 질척였고 쓰레기들이 수많은 사람과 한데 뒹굴었다. 방글라데시 최남단 몽다우 주변 사정에 밝은 방글라데시인 압둘 고푼(33)씨는 “테크나프로 들어오는 난민이 점점 늘고 있지만, 북쪽으로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 도시가 더욱 붐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인 누구도 이방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닿은 테크나프의 아리가칼리파라 마을. 이곳에서도 길게 늘어선 로힝야족의 피란 행렬은 날이 저물도록 줄어들 줄 몰랐다. 몽다우에서 다시 배를 타고 건너오는 이들이다.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자루를 짊어지고 손에는 닭이 들려 있다. 염소를 끄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이들에게 돈이나 사탕을 쥐여주는 방글라데시 현지인들도 적지 않다. 수도 다카 인근 페니에서 전날 내려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이둘라(32)씨는 “해열제, 진통제, 항생제를 나눠주고 있지만 이 약 몇 알이 이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눈앞에 펼쳐진 비극 앞에서 몰려드는 무력감을 표시했다.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던 압사로(45)씨는 “미얀마 군인들에게 가족이 총을 맞고 참수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자랐을 때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고,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들렸다.
테크나프(방글라데시)=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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