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나프강 주변 하루 2500명 탈출
강 너머엔 로힝야족 마을 불타는 연기
방글라인 자원봉사자, 길 안내하며 격려
난민 태워준 배 주인도 들키면 얻어맞아
미얀마 국경을 눈앞에 둔 방글라데시 테크나프의 아리가칼리파라. 18일 오후 이곳에서 뱅골만과 나프강이 만나는 어귀 마을 몽다우로 내려가는 길은 로힝야족 난민들로 붐볐다. 뭍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오는 난민,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프강가로 내려가는 현지인들이 좁은 길 위에서 뒤섞였다. 얕은 방죽 위로 난 길은 맨발의 난민들이 걸었고, 현지인들은 주로 펄이 섞인 양쪽 자갈밭을 밟았다.
며칠을 굶었는지 그들 자신도 모른다. 이야기를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한 난민 가장은 입을 다문 채 맥없이 고개만 동쪽으로 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나프강 너머 미얀마 마웅토. 높은 산을 배경으로 흰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 오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식사를 준비하는 풍경인 듯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처참했다. 현지 안내를 맡은 방글라데시인 압둘 고푼(33)씨는 “미얀마군이 지른 불에 로힝야족의 가옥이 타면서 나는 연기”라고 말했다. 걸음을 멈춘 난민 가장에게 현지인들은 돈을 찔러주고 아이들에게는 사탕 봉지를 내밀었다. 레크리에이션 연맹에서 왔다는 한 관계자는 확성기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식수가 있다”고 안내했다.
아리가칼리파라와 몽다우 인근 지역은 로힝야족이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입국하는 주요 통로다. 난민들은 이곳과 함께 주로 북쪽의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 인접한 밀림, 나야파라 난민 캠프 인근의 나프강을 거쳐 방글라데시에 발을 디딘다. 자원봉사자들에 따르면 아리가칼리파라에서만 하루 2,500명 가량의 난민을 맞는다. 물때가 잘 맞지 않으면 폭 1㎞ 남짓한 나프강을 건너지 못하고 벵골만으로 떠내려 갈 때도 왕왕 있다. 이 때문에 난민을 실은 방글라데시 선주는 최대한 상류에서 배를 띄우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난민은 가장 멀리까지 밀려와 닿은 경우다. 고푼씨는 “전체적으로 국경을 넘는 난민은 날마다 1만명이 훨씬 넘는다”며 “지금까지 45만명은 족히 탈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푼씨의 도움으로 도착한 몽다우 마을의 한 이슬람 사원. 국경을 넘은 난민들이 처음으로 쉬는 공간이다. 많은 난민 어린이들이 있었지만 경내는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이방인을 향한 경계의 눈빛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이들을 돌보고 있는 이맘(이슬람 성직자) 자말(41)씨는 “최소 일주일 이상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겨우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라며 “하루 이틀 안정을 취하게 한 뒤 내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날로 늘어나는 난민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인근 가정집들도 나눠 돌보고 있다고 했다.
자말의 안내로 든 사원 내부에서 2시간 전 막 도착했다는 마흐마디 알롬(35)씨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아내 유베다(30)와 함께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미얀마 마웅토에서 왔다는 그의 얼굴은 어수선했다. 미얀마에서는 인력거 수리 일을 했지만 난민 처지가 된 지금은 앞날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저축한 돈은 없어도 집과 번듯한 수리센터가 있어 일곱 식구가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는 “뭐라도 해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고 호소했다. 가족은 눈에 띄면 무조건 때리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쳤다.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잔뜩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어두워지면 이동했다. 국경을 넘기까지 24일이나 걸려 다른 난민들에 비해 2배나 긴 시간이 소요됐다.
강을 건너온 난민들에 따르면 나프강 국경을 건너는 데 드는 뱃삯은 한명 당 5,000타카(약 7만원). 지난달 25일 미얀마 군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시작된 직후 거래된 15만타카에서 많이 내렸다. 현지 안내를 맡은 로힝야족 통역은 “방글라데시인 선주도 미얀마 군에 발각되면 두들겨 맞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면서도 “대부분 농사를 짓는 난민은 돈이 없어 값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작은 어선은 한 번에 15명, 중간 크기 배는 30~40명, 큰 배는 100명 가까이 실어 나른다고 한다. 미얀마 군에 들키지 않으려 주로 밤에 움직인다. 고푼씨는 “사람을 너무 많이 태워 오다가 차가 전복된 적도 많다”고 전했다.
그나마 온 식구가 온전하게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알롬씨 가족은 운이 좋은 편이다. 국도 1호선 길가의 난민 텐트에서 만난 수럿 알롬(32)씨는 “어머니가 군인들의 몽둥이에 맞아 팔이 부러진 채로 왔다”며 “구호의 손길은 고사하고 어디 이야기할 곳도 없다”고 답답해 했다. 부러진 노모(70)의 왼팔은 아들이 기자에게 하소연하는 동안 계속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테크나프(방글라데시)=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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