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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벨문학상 특수는 소설가만?

입력
2017.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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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노벨문학상 특수는 소설 분야에 집중됐다. 파트릭 모디아노(왼쪽부터)와 앨리스 먼로,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무크는 국내에서 수상 특수를 많이 누린 수상자들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10년간 노벨문학상 특수는 소설 분야에 집중됐다. 파트릭 모디아노(왼쪽부터)와 앨리스 먼로,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무크는 국내에서 수상 특수를 많이 누린 수상자들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벨상의 계절’. 출판계가 가을 앞에 붙이는 수식어다. 노벨문학상은 발표 날짜를 미리 정하지 않지만, 통상 10월 첫째 주 목요일에 나온다. 이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면 노벨상 특수를 기대하며 국내 출판계도 술렁인다. 저작권 적용이 엄격해지면서 10여개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노벨상 수상작을 번역 출간했던 진풍경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가 됐지만, 수상자 작품 판권을 확보한 출판사라도 일반의 관심이 달아올랐을 때 책을 내야 호재로 활용할 수 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출간이 가능한 후보 작가들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문학동네는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등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10여 명의 책을 출간해 재미를 봤던 노벨상의 계절 신흥 강자다. 문학동네가 올해 준비한 신작은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인형’과 ‘21세기 베케트’로 불리는 노르웨이 작가 욘 올라프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다. 2014년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옮긴 권수연씨, ‘숨그네’ 등 2009년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대표작을 옮긴 박경희씨가 각각 번역한 책들로 표지 선정만 남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 도서를 많이 내놓은 출판사 민음사는 자사에서 책을 낸 작가가 수상할 경우 관련 자료를 즉시 배포하도록 발표 당일 저녁 담당 편집자들을 비상대기 시킨다.

노벨상 특수를 잡기 위해 서점도 바빠졌다. 노벨문학상 발표 일이 추석 연휴인 5일로 예상됨에 따라 주요 대형서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응구기와 시옹오, 마가렛 애트우드 등 유력 후보들의 작품 재고 파악부터 나섰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역대 수상작가 도서 구매 시 ‘위대한 작가들 리딩카드북’ 증정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노벨문학상 특수 있나

노벨문학상을 타면 판매량이 얼마나 늘까. 출판계는 어느 정도 노벨상 후광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에 의뢰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상자 12명의 대표작 판매량을 발표일 기준 1년간 비교해보니 많게는 1,000배 이상 늘었다. 판매량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작가는 2013년 수상자 앨리스 먼로로 1,262배가 뛰었다. 2015년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330배), 2014년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66배)도 눈에 띄게 판매량이 올랐다.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수상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근한 반응으로 끝난 작가도 있다. 2000년대 수상자 중 베스트셀러 작가는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로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은 2006년 수상 전 판매량이 3만부였는데 이후 30만부가 더 팔렸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헤르타 뮐러 ‘숨그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수상 발표 후 5만~10만부 가량 판매됐다. 노벨상 수상 전 1만2,000부가 나간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2007년 발표 후 5만8,000부가 더 팔렸다.

◆노벨상 대표작 누적 판매량

김도훈 예스24 도서 MD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대체적으로 해당 작가의 작품은 판매량이 증가하지만, 정도와 향후 추이는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장르, 작가의 국내 인지도, 출간된 작품 종수 및 국내 평판, 수상 발표 후 마케팅 집중력 등에 따라 판매의 추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경우 국내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이미 작품 몇 종이 국내에 소개됐고 수상 후 마케팅, 추가 작품 소개가 발 빠르게 이뤄져 최근 10년 간 가장 큰 ‘대어’가 됐다는 설명이다. 김경은 문학동네 세계문학팀 차장은 “클레지오, 모디아노 등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 핵심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의 경우 수상 이후 독자층이 더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노벨상 특수는 소설 분야에 집중됐다. 희곡, 시 분야 수상자로 수상 후에도 반응이 미지근했던 작가 해롤드 핀터(왼쪽),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벨상 특수는 소설 분야에 집중됐다. 희곡, 시 분야 수상자로 수상 후에도 반응이 미지근했던 작가 해롤드 핀터(왼쪽),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설가는 대박 시인 극작가는 재미 못 봐

2011년 수상자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수상 후 국내 유일하게 발매된 그의 시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의 판매율이 269배 뛰었지만 이전 판매가 워낙 미미했고 추가 작품집도 나오지 않아 이제까지 팔린 누적 부수가 8,000부에 그쳤다. 2005년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출판사 평민사는 서둘러 ‘해럴드 핀터 전집’(전 9권) 1,000질을 찍고 곧바로 재인쇄에 돌입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가 1권과 8권만 좀 팔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재고가 돼 아직도 남아 있다. 평민사는 “1권은 작가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샀고, 8권은 대표작 ‘배신’이 수록돼 판매가 됐다”면서 “소설이 아닌 희곡집이라 효과를 못 봤다”고 말했다.

출판시장의 구조적인 불황 탓에 노벨문학상 특수가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판사들의 특수 준비도 예전만 못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부터 100m 경주하듯 번역물을 쏟아내던 호시절에 비해 힘이 빠져가는 모양새다. 지난해 10월 유력 수상 후보인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의 대표작 ‘한 톨의 밀알’, ‘십자가 위의 악마’를 각각 출판했던 출판사 창비와 은행나무는 올해 새로 준비하는 작품이 없다. 권은경 창비 세계문학팀 편집자는 “올해는 응구기, 돈 드릴로 등 그간 펴낸 작품들을 정리하는 정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부터 작년까지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표작을 출간한 문학동네 역시 “(해당 작가 작품 출판은) 판매만을 고려한다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노벨문학상 작품집 판매신장률

※자료: 교보문고(수상일 1년 전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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