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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우리 사회 고질병, 흑백논리

입력
2017.10.0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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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생각과 다르다고 무조건 적대시

타 지역 배척 지역감정도 같은 사고

복잡한 세상사 한 잣대로 재단 말아야

우리가 흑백논리란 말은 자주 쓰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흑백논리와 무관하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흑백논리에 빠져있기 쉽다. 고정관념이 생각의 감옥에 갇혀 세상의 한쪽 면만 바라본다면, 흑백논리는 여기서 더 나가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혀 내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모두 잘못되었다고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대학생 종교 모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중 어느 소수 종교의 얘기가 나왔고, 그 교주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 미국에서 쓰면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으니 애국자로 본다고 했다. 그랬더니 앞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곤혹스러워 했다. 자기 생각에 그와 같은 천하의 이단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눈치였다. 강의 끝 무렵 이점이 못내 마음에 걸린 나는 그 여학생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자기 종교의 입장에서는 이단이라 할지라도 세속적으로 얼마든지 애국자일 수 있다. 이것은 설령 이단 신앙을 가졌다 해도 좋은 부모일 수 있고, 좋은 친구일 수 있으며, 좋은 선생일 수 있는 것과 같다. 자기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나쁜 부모이고, 나쁜 친구이며, 나쁜 선생이어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것을 흑백논리라고 한다. 흑백논리야말로 야만적이다. 지성인이라면 이런 흑백논리를 배격해야 한다.”

최근 친여 성향의 팟캐스트에 출연을 했다.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면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박수는 쳐줍시다” 한다. 이건 무례가 아니라 천박이다. 진행 중에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답변이 나오면 은근히 화를 내며 조롱까지 한다. “왜 사안마다 답변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냐”고 나무라기도 한다. 모든 일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이념을 토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일 게다. 세상 일이 실제로 그런가.

자기와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과 인터넷 공간이다. 여기서는 자기와 다른 논리를 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인신공격과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증오심을 표출한다. 오죽하면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겠는가.

지역감정은 흑백논리의 한 모습이다. 애향심과 지역감정은 자기 지역을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지역감정이 애향심과 다른 점은 다른 지역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전에 영남 출신 지인을 만났는데 자기 동향 후배가 나를 나쁜 놈이라 욕하기에 왜 그러냐 했더니 “그 자식 전라도잖아요” 라고 했단다. 나와 다른 지역 출신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 이 같은 허무맹랑한 흑백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흑백논리가 판을 치는 야만적인 풍토가 편가르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고로 편가르기는 권력자들이 지지자들을 동원할 때 쓰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리고 흑백논리를 이용한 편가르기가 판을 치는 시대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다 암흑기였다. 서구의 중세가 그랬고, 히틀러의 나치 제국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폴 포트의 킬링필드가, 미국의 매카시즘 시대가 그랬다.

우파는 부패가 문제고, 좌파는 무능이 문제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거치며 우파가 유능하다는 신화는 깨졌다. 그럼 좌파는 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는가. 위에서 보았듯이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모두 한 가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며 단순하게 판단하고 처리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해고를 어렵게 만들면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그래서 국정운영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지금의 국정운영은 너무 쉽고 명쾌하다.

사민당 당수였던 독일의 슈뢰더는 원래 좌파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독일의 현실을 꿰뚫어 보며 유연한 정치를 편 덕분에 본인은 실패했으나 죽어가는 독일을 살려냈다. 그의 독일 개혁 경험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맞춤형 처방과도 같다.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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