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상여금은 고사하고 임금이라도”
건설근로자 김명훈(53)씨는 사상 최대 연휴라는 이번 추석이 시작됐지만 기쁘기는커녕 막막하기만 하다. 지난 여름 강원 동해안에 위치한 한 섬에서 건축공사를 했지만 연휴 상여금은 고사하고 아직도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탓에 차례상을 차릴 돈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쓰메끼리(2, 3개월 가량 지급이 미뤄진 유보임금) 관행 때문에 공사장에서 임금이 한 두 달 밀리는 건 흔하지만, 명절에 이렇게 되니 눈앞이 캄캄하다”면서 “명절 목돈을 마련하려고 여름 뙤약볕 아래서 숨막히게 일했는데 다 허사가 됐다”고 털어놨다.
역대 최장이라는 추석 연휴가 시작됐지만 임금 체불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근로자들의 한숨은 깊다. 남들 쉴 때 쉬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임금까지 체불되니 그 답답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추석에는 지난해에 비해 체불 금액은 줄었으나, 피해 근로자는 늘어났다. 당장의 생계에는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이는 ‘소액 피해’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전국 체불 임금액은 8,909억원으로 피해 근로자는 21만9,0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9,471억원ㆍ21만4,000명)과 비교해 금액은 5.9% 줄었지만, 근로자 수는 2.1% 늘었다. 이런 임금 체불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체불 임금액과 근로자는 2013년 각각 26만6,508명, 1조1,929억원에서 지난해 32만5,430명, 1조 4,286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체불임금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발주기관→원청→하청→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대금지급 구조 탓에 임금체불이 빈번한 건설업의 경우 정확한 실태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는 9월 1일부터 11일까지 모든 소속기관과 산하기관의 건설현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공사대금 체불액은 106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추석(167억8,000만원)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고 발표했으나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컸다. 특히 철도시설공단 발주공사의 경우, 국토부는 체불임금 총액을 1억1,200만원으로 파악했지만, 건설노조에 따르면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공사현장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임금체불액은 총 12억6,000만원에 달했다.
고용부는 이에 추석을 앞둔 9월 11일부터 29일까지 3주간 체불임금 청산 집중지도기간을 운영하는 등 체불임금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매년 ‘체불임금 청산 집중지도 기간’이 있었지만 임금 체불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체불제도는 감독, 형사처벌 중심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러한 제도만으로 체불 해결은 한계가 있고 제도의 유연성 문제도 발생한다"고 전했다. 형사처벌 전에 당사자 간 사전 조정 및 중재를 통한 해결방안 도입, 반복적 또는 고의적 체불에 대한 배상제도 도입, 사업주의 인식 개선, 사전 예방 정책 추진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청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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