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의례부장이 말하는 차례상 차리기
추석이 내일 모레다. 종일 맡을 기름 냄새에 피로와 다툼도 벌써 걱정이다. 꼭 홍동백서, 어동육서를 맞춰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을 차려야 정성을 다하는 것일까.
박광영(44) 성균관 의례부장은 “과시욕으로 차리는 현 차례상은 전통과 무관하게 잘못 정착된 문화”라며 “차례(茶禮)라는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차례상 차리기에 대해 물었다.
-정부가 율곡의 ‘격몽요결’을 근거로 삼는데…
“격몽요결에 나온 것은 기일에 지내는 제사 상차림이지 차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라며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다. 돌아가신 분께 지내는 제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다. 다른 하나는 세시풍속, 추석, 설날, 한식, 단오 등 명절에 지내는 것으로 바로 차례다. 예전부터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가족이 모이다 보니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 하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차례는 아니다. 명절 아침에 지내는 ‘차례(茶禮)’란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지닌다.”
-정부가 근거 없는 지침을 발표하고 있나
“기제사와 차례를 혼동하는 데서 잘못이 시작된 것 같다. 현재는 기제사를 등한시하고 차례를 보급하는 문화가 돼 있다.”
-제례 규칙은 언제 어떻게 시작돼 정착됐나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 ‘주자가례’가 들어와서 모든 제례가 활성화되고 정착됐다. 율곡 선생 때 사회적 약속으로 정착된 것이고 조선후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이 묘사하는 것은 기제사 상이지 차례상이 아니다.”
-어동육서, 좌포우혜 등은 어디서 시작됐나
“어느 정도 기본적인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로의 기억을 더듬거나, 2차적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건 우리나라 기준이 아니다. 중국에서 보면 동쪽이 바다고 서쪽이 육지이니 생선을 동쪽에 육고기를 서쪽에 놓는다는 식의 일부 기록이 있다.”
-근거도 없는 규칙이 왜 점점 더 복잡하게 굳어졌을까. 과시욕이 문제인가
“맞다. 1950~70년대 이런 문화가 잘못 정착됐다. 올바른 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기억을 더듬어 종합하다 보니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만 해도, 조선 시대에도 일반 백성들은 자기 부모 제사만 지냈지, 2~4대 봉사는 벼슬 있는 집안만 했고 특히 4대 봉사는 아주 벼슬이 높은 집안에서만 하는 문화였다. 갑오경장이 일어나서 신분제가 철폐되고 반상의 구분이 없어지지 않았나. 그 이후 누구나 다 ‘4대 봉사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2대 봉사를 하면 벼슬 없는 집안 취급 받는다는 거다. 이런 문화가 일제강점기 때 말살됐었다. 그런데 이후 광복이 되고 1960년대에 들어와 다시 ‘2대 봉사만 하면 우리 집안이 과거 상놈 취급 받는다’는 식의 인식이 퍼졌다.”
-차례상을 거창하게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 심리인가
“차례는 특히 돌아가신 분 위주가 아니다. ‘예서’에서는 추석이나 명절에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채소나 과일을 준비해서 올린다”고 얘기한다. 형편에 따라 지내라는 것이다. 복잡하게 현대에 와서 만든 차례상보다 훨씬 간단해야 한다. 사실 추석, 설날 때마다 이런 질문 나오는 게 불편하다. 명절이라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모이는 것이고 상도 간단해야 하는데, 4인 기준 차례상이 30만원에 달하는 일은 옳지 않다.”
-허례허식을 빼고 간소화한다면 어떻게 차릴 수 있을까
“돌아가신 분께 술로 교접하는 거니 술은 갖추고 안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적, 떡, 과일 등을 한가지씩 갖추면 좋겠다. 별식으로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 등 그 시기의 대표적 음식을 올리는 것도 좋다.”
-빼도 되는 음식이 있다면
“빼는 것보다 들어가야 할 것을 위주로 생각하는 게 낫다. 술을 중심으로 밥과 국, 적, 나물 등의 순서로 모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만큼 최소한만 준비하면 좋겠다. 꼭 가짓수나 양이 많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점은 제사는 돌아가신 분이 중심이더라도, 차례는 남은 가족들이 중심이다. 그런데도 차례상 때문에 며느리는 명절 내내 일만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과거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제사 음식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남녀는 평등하니 당연하다. 과거 궁에서는 대령숙수, 즉 남자가 음식을 했다. 지금도 종가에서는 남자들이 장본다. 음식도 같이 해야 한다. 조상을 모시는 데 남녀가 따로 있겠나. 아들 귀하면 며느리도 귀한 것은 당연하다. 한때 보면 어떤 집은 여자들이 제사에 얼씬도 못하게 했었다. 그것은 되레 우리가 유교를 오해한 건데, 유교는 절대로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남녀가 같이 모시면 되나
“맞다. 다만 유교는 아버지가 중심을 잡다 보니 가부장제라는 오해가 생기는 건데, 결코 여성을 천대하도록 가르치진 않는다.”
-요즘은 채식주의도 많은데, 이런 분을 모실 때는 어떻게 하나
“앞서 설명했듯 차례는 남은 사람 중심, 제사는 돌아가신 분 중심이다. 차례는 돌아가신 분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 한 두 가지를 올린 뒤 준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올리면 된다. 가족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것,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도 된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미도 고취시킬 수 있다. 못 먹는 음식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해 나누며 고인을 추억하는 게 자연스럽다.”
-즐거운 가족 모임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까.
“형식보다 정성이 중요하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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