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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추석에도 미사일이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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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추석에도 미사일이 화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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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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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잘 익은 햇과일을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풍경. ‘추석’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교과서 속 인생과 실제 삶이 다른 것처럼, 추석 명절 역시 늘 풍요로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추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957년부터 2007년까지 총 6번의 추석 연휴 기간에 발행된 한국일보의 옛 기사를 통해 앞선 한가위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1957년 ㆍ‘의운(疑雲)에 싸인 소련의 ICBM 성공’

1957년 9월 8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7년 9월 8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957년 추석인 9월8일자 한국일보에는 ‘십자로에 선 파멸과 평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불과 3주 전인 그 해 8월 26일, 당시 소련에서 ICBM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불과 4년밖에 안 된 냉전시기. 때문에 이 소식은 2017년 현재 북한의 ICBM발사 성공 사실에서 느껴지는 무게만큼이나 위협적으로 보였습니다.

기사는 소련의 ICBM의 파괴력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소련이 성공했다는 유도탄은 T30으로 짐작되고 있지만 그것의 ‘속도와 사정거리’ 그리고 과연 ‘그 유도탄이 목표에 적중하기 전에 비행시에 생긴 열로 변형하거나 열핵탄두가 즉발하지 않도록 되어있는가’ 하는 문제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한편 미국도 쏘련 측발표에 두 달 앞서 ‘애트라스(SM-65 아틀라스ㆍ미국 최초의 ICBM)’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가 6,000피트 상공에서 파괴되었다고 응수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1967년ㆍ‘백화점 붐비고 시장은 한산’

1967년 9월 16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7년 9월 16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화점은 인산인해인데 시장은 썰렁’ 언젠가부터 명절만 되면 들려오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농수산물 유통은 전통적으로 시장이 책임져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잘 포장된 선물세트가 구비된 백화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점차 힘을 잃어갔습니다. 1967년 추석 이틀 전에 발행된 9월16일자 기사는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사는 당시 추석은 불경기가 아니지만, 명절맞이를 하는 고객들이 백화점에만 몰려 시장경기는 좋지 않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도파ㆍ시대ㆍ신세계ㆍ신신 등 각 백화점은 큼직큼직한 할인대매출광고로 고객을 끌고 500원 이상 구매자에게는 비누ㆍ화장품등을 선물하는 등 각종 ‘아이디어’로 치열한 대목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반면 “시장은 한산”하고 “때때옷 한복가게는 울상”인 극과 극의 풍경이 벌어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977년ㆍ 예나 지금이나 먹거리 안전은 걱정

1977년 9월 29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7년 9월 29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7년 9월26일, 추석 하루 전이던 이날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가정에서 라면인 ‘삼양칼국수’안에서 구더기가 발견됐다는 게 화제였습니다. 발견자인 김진자(당시 19세)양은 “야채수프 봉지에서 길이 7~8㎜의 노란색 구더기 10여 마리가 우글거리는 것을 발견,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양이 구더기를 발견하기 하루 전에도 서울 강남에 사는 김병길(당시 31세)씨가 같은 제품에서 벌레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삼양식품공업은 5월에 제조된 야채수프를 유효기간이 지나도 수거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라면에서 등장한 벌레, 유통기한이 지나도 버젓이 팔리는 제품들. 40년 전 일이지만 기시감(데자뷔)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살충제 계란’ 파동이 발생한지 불과 두 달 만에 우리는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87년ㆍ ‘역시 한가위…1,200만 명 대이동’

1987년 10월 6일 추석 전날 서울역의 풍경(왼쪽) 및 당시 상황을 보도한 기사(오른쪽).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10월 6일 추석 전날 서울역의 풍경(왼쪽) 및 당시 상황을 보도한 기사(오른쪽). 한국일보 자료사진.

슈퍼스타가 내한공연이라도 온 걸까요? 1987년 10월 6일 추석 전날의 새벽1시의 서울역 광장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입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광화문 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 풍경은 30년 전 명절 귀성이 얼마나 활발했는지 보여줍니다. “귀성객들은 새벽부터 역 광장에 앉은 채 열차시간을 기다렸으며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임시열차의 입석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200여미터 이상 장사진을 쳤다”고 합니다.

당시 귀성객들을 대상으로 한 암표판매와 바가지 과금도 극성이었다고 합니다. “귀성전쟁 와중에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몰려든 관광전세버스들은 고속버스요금의 3~4 배를 요구, 관할 서초경찰서에는 바가지 요금 항의전화가 쇄도했다”는 대목도 보이네요. 명절 연휴에 차례를 지내는 대신 해외여행을 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요즘과는 매우 다른 풍경입니다.

1997년ㆍ ‘우리의 나리는 죽었다’

1997년 9월 13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9월 13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추석엔 고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사건으로 들썩였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8살 박양이 유괴됐다가 2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습니다. 추석을 불과 4일 앞둔 9월12일 범인인 전현주(당시 28세)씨가 검거되면서 명절 연휴까지도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범인인 전씨가 만삭의 몸으로 자신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약취ㆍ유인) 등 혐의로 기소된 전씨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2007년ㆍ ‘조심스런 변ㆍ신’

2007년 9월 22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9월 22일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0년 전 추석에도 ‘명절’ 보다는 다른 사건이 화제였습니다. 신정아 전 동국대 조교수의 학력위조와 그를 비호하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둘러싼 수사가 한창이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추석 직전인 9월22일 기사는 검찰이 두 사람을 불러 ‘흥덕사 국고예산 지원 외압 행사와 미술관 공금 횡령’등의 혐의를 집중 조사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2007년 7월 미국으로 도피했던 신씨가 9월16일 돌아오면서 재개된 조사였습니다.

두 사람의 혐의는 이듬해에 모두 밝혀졌습니다. 2008년 3월 서울 서부지법은 신씨에게 학력위조 및 미술관 공금 횡령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고, 변씨에게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자료조사 DB콘텐츠부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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