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강사님께 드릴 만원 가져오세요”
사립수영장에 다니는 대학생 신모(23)씨는 수업을 마친 후 한 회원으로부터 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간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토박이 회원들이 수영강사에게 줄 추석 떡값을 모은다는 것. “감사인사는 개인적으로 하면 되지, 왜 집단적으로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며 거절한 신씨는 다른 회원들의 눈치가 보여 수업시간까지 바꿨다. 신씨는 “강사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라며 “수영장 차원에서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 추석 풍경이 달라졌다. 추석 선물과 떡값을 주고 받던 과거와 달리 ‘안 주고 안 받는’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 그러나 김영란법 적용 여부가 불분명한 체육시설, 어린이집 등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떡값 문화가 그대로 남아 토박이 회원과 신규 회원 사이에 갈등이 초래되는 일도 적지 않다.
추석을 앞두고 어린이집, 유치원 학부모들이 “선생님께 뭐라도 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민에 빠진 것도 ‘안 주고 안 받는’ 문화가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했기 때문. 학부모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선물을 안 드리려니 눈치가 보인다”거나 “요즘 선물 안 드리는 분위기가 맞느냐”는 질문 글을 올리며 다른 학부모들 반응을 살폈다. 사설 어린이집 학부모 전모(36)씨는 “교사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들이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도 없어 고민이었다”며 “결국 학부모들이 직접 만나 의논한 끝에 올해는 아무도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을 막고자 “떡값이나 선물을 건네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을 붙이며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에 나선 시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 양천구민체육센터는 소속 강사들에게 “수강생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을 경우 해임 조치하겠다”며 ‘떡값 문화 근절 서약서’를 받은 데 이어, 수강생들에게 명절마다 단체문자를 보내며 “선물은 건네지 말아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한 사립유치원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음식, 음료, 커피 등 모든 선물을 사양한다”는 안내문을 보냈다.
선물 고민을 덜게 된 학부모들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사립유치원 학부모 송모(39)씨는 “얼마 전 길에서 만난 유치원 교사에게 귤 몇 개를 권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며 “먼저 거절해주니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명절마다 고민을 안 해도 돼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사립 어린이집 학부모 박모(34)씨도 “다른 학부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서로 눈치 보며 ‘적당한 선물’을 고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며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강한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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