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최고가는 희소성 높은 와인이 차지
구매 드물어도 극소수 수요 위해 제작
안 팔리면 연중 판매… 가격 더 낮추지는 않아
이번 추석에도 백화점에는 어김없이 수백만~수천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선물세트가 등장했다. 가장 비싼 선물세트는 대기업 신입직원 연봉과 맞먹는 4,000만원. 일반인들은 구매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초고가 선물세트는 극히 일부만 판매가 이뤄진다고 한다. 과연 누가 구매하고, 잘 팔리지도 않는 초고가 선물세트가 매번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이 판매 중인 추석 선물세트 중 최고가는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 1등급 경작지에서 재배된 포도를 원료로 담은 최고급 ‘그랑크뤼 클라쎄’ 와인 60종을 모은 ‘2009년 그랑크뤼 60종 세트’(총 수량 1개)로, 판매가격은 4,000만원이다. 백화점 업계가 이번 추석에 내놓은 선물세트 중 가장 비싸다. 신세계백화점은 생산량이 매우 적어 열광적인 추종자만 찾는다는 '컬트 와인'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미국 ‘스크리밍 이글와인’ 빈티지 컬렉션 6병(03ㆍ04ㆍ06ㆍ09ㆍ12ㆍ13년)으로 구성된 ‘스크리밍이글 버티컬’ 선물세트(총 수량 1개)를 2,700만원에, 현대백화점은 1982년 프랑스 보르도산 포도로 담근 고급 와인 '샤토 라뚜르(1병)’ 선물세트(총 수량 5개)를 820만원에 각각 내놨다. AK플라자는 호주 남부 문화재로 등재돼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호주 최고 와인으로 손꼽은 ‘펜폴즈그랜지’ 2009년산과 2010년산으로 구성된 ‘호주 프리미엄 세트’(300만원), 한화갤러리아백화점은 국내에 12개 세트만 판매되는 프리미엄 스카치 브랜드 로얄살루트 30년 플라스크 에디션(700㎖ 1병, 130만원)을 내놨다.
그러나 주요 백화점이 내놓은 한우 굴비 등 100만~300만원대 고급 선물세트가 준비된 물량이 거의 ‘완판’되는 것과는 달리, 최고가 추석 선물세트를 실제로 구매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로 각 백화점의 최고가 추석 선물세트 중 판매된 것은 1일 현재 현대백화점 '샤토 라뚜르’(1개) 뿐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전화 문의가 하루 평균 5~10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잘 팔리지 않아도 초고가의 선물세트를 내놓는 이유는 백화점은 대형마트 등 다른 유통 채널과 달리 고급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아도 최고급 선물세트를 사려는 소수 고객이 있어 한정 수량으로 준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어느 업체가 최고가 선물세트를 내놓느냐는 업체간 미묘한 자존심 싸움도 반영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값비싼 와인이나 한정판 세트 등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귀한 선물세트도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커, 실제 판매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각 사 최고가 선물세트가 모두 주류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는 고급 선물로 통하는 한우 굴비 등은 아무리 비싸도 100만~200만원대인 반면 와인은 희소성이나 포도생산지, 수확한 햇수(빈티지) 등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가 높아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희소성 높은 상품을 찾기 위해 상품기획자(MD)는 수 개월 전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소문 한다. 또 와인은 설, 추석 등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판매 가능해, 선물세트 판매기간 이후에도 고객의 문의가 와 구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판매 가격이 더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고가 와인 선물세트는 개인 고객이 평소에 구매하기 어려운 희귀한 상품을, 명절을 맞아 한 데 모은 패키지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고객 외에 일부 와인 애호가들이 소장하려고 직접 사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공들여 만들지만, 구매된다는 보장이 없어 실속을 중시하는 업체는 최고가 선물세트 판매를 지양하는 곳도 있다. A백화점 관계자는 “고객 사이에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커 선물세트는 가능한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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