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고금리 예ㆍ적금 쏟아내지만
우대 조건 까다로워 ‘빛 좋은 개살구’
직장인 황모(35)씨는 최근 최고 금리 연 2.0%의 신한은행 ‘알파레이디’ 적금에 가입하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여성 고객에게 ‘차별화된 우대이자율’을 제공한다는 상품 소개에 끌렸지만, 정작 우대이자를 받기 위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이 상품의 기본금리는 1.3%. 우대금리 조건을 채워야 0.7%포인트를 추가로 얹어준다. 우대금리를 모두 챙기려면 3가지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친구 2명에게 이 상품을 소개한 뒤 가입(0.4%포인트)까지 시키고, 신한은행이 만든 ‘민트 레이디 클럽’ 게시판에 어떤 글(0.1%포인트)이든 올려야 한다. 신한은행이 정한 기념일에 적금통장에 돈을 넣으면 그 건에 대해서만 0.2%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적립 최대한도가 50만원인 걸 고려할 때 이 같은 수고의 대가는 1,000원에 불과하다. 황씨는 “카카오뱅크는 적금통장으로 자동이체만 걸어둬도 0.2%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줘 쉽게 연 2.2% 금리를 챙길 수 있다”며 “굳이 까다로운 시중은행 적금 상품에 가입할 유인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맞서 전에 없던 높은 금리를 내건 예ㆍ적금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상품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상품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금리를 낮게 해두고 갖가지 우대금리 항목을 붙인 전형적인 낚시성 상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주거래 우대적금’은 기본금리가 연 1.05%로 낮지만 우대금리 연 1.6%를 추가로 받으면 최대 2.65%(1년 기준)의 이자수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1.6%를 추가로 챙기기 만만치 않다. 신한은행을 월급통장으로 지정하고(0.5%포인트), 비대면 방식으로 모바일 뱅크 ‘신한S뱅크’로 가입 후 로그인까지 하면 0.2%포인트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신한카드 결제계좌 지정(0.3%포인트), 신한금융투자 증권거래 계좌 지정 또는 신한생명 보험료 납부계좌 지정을 하면 0.2%포인트를 제공한다. 신한카드 가입과 동시에 신한 증권계좌를 트거나 보험에 가입해야 0.5%포인트를 챙길 수 있는 셈이다.
기업은행의 ‘I-ONE 300 적금’은 최고 2.2% 금리(1년 기본금리 1.4%)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비대면 채널에서 기업은행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이 카드를 결제계좌로 기업은행을 지정한 뒤 적금 가입기간 동안 100만원 이상 사용해야 0.3%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공과금 자동이체 실적, 적금 상품으로의 자동이체 실적까지 충족하면 추가로 0.3%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초대해 가입까지 시키고, 적금 만기 후 재가입까지 하면 0.2%포인트의 금리를 추가할 수 있다. 어지간한 공을 들이지 않는 이상 0.8%포인트 우대금리를 모두 받기란 사실상 힘든 셈이다.
우리은행의 ‘위비라이프 G마켓ㆍ옥션 팡팡적금’은 최대 연 7% 금리를 내걸었지만 이를 다 받으려면 5개월 동안 100만원치 물건을 사야 한다. 우리은행이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옥션 또는 G마켓에서 다달이 5개월 연속 20만원 이상씩 결제해야 연 5%포인트의 금리쿠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 최대적립금 한도가 25만원에 불과하다. 월 25만원씩 1년 가득 채워 연 7% 금리를 제공받아도 손에 쥐는 이자는 2만1,000원에 불과하다. 2만1,000원을 벌려면 최대 100만원 물건을 사야 하는 셈이다.
시중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주는 조건으로 대부분 비대면 채널 가입 등을 강요하다 보니 정작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50~60대는 소외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뱅크 출현으로 은행 간 주거래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보니 우대금리를 미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높은 예ㆍ적금 상품을 찾는 소비자라면 저축은행으로 눈을 돌리는 게 더 낫다. 저축은행 역시 은행처럼 예금 5,000만원까진 정부가 보장해 까먹을 위험이 없는 데다 금리도 더 높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상품 중엔 연 3%가 넘는 적금 상품도 적지 않다. 저축은행중앙회 홈페이지나 금융상품한눈에(http://finlife.fss.or.kr)란 사이트에 들어가면 금리가 높은 순대로 금융권 예ㆍ적금 상품을 조회할 수 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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