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도둑 같이 올 것”(이명박 전 대통령, 2011년 6월 21일)
“통일은 대박이다”(박근혜 전 대통령, 2014년 1월 6일)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문재인 대통령, 2017년 9월 27일)
도둑과 대박, 그리고 새벽.
최근 역대 대통령이 북한을 바라본 시각의 변천사다. 표현도 각양각색이고, 그에 따라 대북 접근법도 달랐다. 그 사이 북한이 핵ㆍ미사일 폭주를 계속하면서, 이제 우리 정부를 아예 제쳐둔 채 미국과 직접 맞붙자며 덤비는 걸 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약발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문재인 정부가 이제서야 몸을 풀기 시작한 임기 첫 해인 점을 감안하면, 과거의 경험에서 어떻게든 타산지석의 교훈을 찾아야 할 때다.
돌이켜보면, 이명박ㆍ박근혜ㆍ문재인 정부 모두 시작부터 북한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후 불과 5개월도 채 안돼 금강산 관광객 피살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는 걸 보면 당시의 충격과 배신감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2009년 5월 2차 핵실험으로 악재가 겹치더니,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과 11월 연평도 포격도발을 거치면서 위기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이 전 대통령의 ‘통일 도둑론’은 이 같은 북한의 잇단 도발을 겪으면서 나왔다. 북한은 대화 파트너이기는커녕 자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연히 우리가 할 일은 도둑을 경계하면서 굳건하게 집을 지키거나, 아니면 통일 항아리를 만들어 북한 급변사태 이후를 대비하는 게 상책이었다. 급기야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통일이라는 도둑이 눈 앞에 어른거렸지만, 점차 신기루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땅을 칠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통일 대박’ 주장 또한 무지와 아집의 소산이었다. 2013년 2월 취임식을 불과 2주 앞두고 북한이 3차 핵실험으로 치고 나가면서 남북은 박근혜 정부 시작부터 간 보기를 건너 뛰고 바로 대결양상으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불한당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기승을 부리면서 북한은 더 이상 마주볼 상대가 아니었다. 2014년 10월 군사당국회담으로 물꼬를 터보려 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특히 당시 탈북한 북한 일부 고위층들이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동굴의 우상’에 빠졌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맘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곧 망할 북한을 상대로 무언가를 도모하기 보다는 대박을 낼 수 있는 로또에 불과했다. 통일 대박 발언 두 달 후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지만, 북한이 매몰하게 반응하면서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는 싸늘하던 남북관계에 얼음을 들이부으며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첫 해부터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조만간 완성단계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으로 남북관계의 청사진을 밝히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역설하고, 북한을 향해 연거푸 당국회담을 제의하고, 한반도 운전대론을 설파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느 하나 신통치 않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물론 북한이 우리의 기대를 깡그리 무시한 채 제멋대로 활개치고 있기는 하다. 이 밤의 끝이 과연 언제일지, 여명이 트기는 할는지, 구름 뒤에 해는커녕 폭풍우가 몰아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북한을 도둑으로 매도하거나 대박의 대상으로 비하하며 남북관계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도둑은 잡거나 방범망을 쳐서 아예 차단하면 되고, 요행을 바라는 대박은 운이 나빠 봐야 몇 푼 잃는데 그치면 그만이다. 반면 밤이 지나고 찾아오는 새벽의 햇살은 모두가 함께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과, 아니면 남북관계에 늘 딴지를 거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얼굴을 맞댈 접점이 있다.
문제는 새벽 또한 우리의 예상과 달리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새벽’ 발언이 과거 정부의 도둑이나 대박 주장과는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자칫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오는 이유다. 염려가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새벽을 맞이하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할 때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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