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등을 보일 때, 우리는 그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어진다. 모로 누워 잠을 청하는 어머니와 TV 앞에 쪼그려 앉은 아버지는 그래서 슬프다. 뒷모습엔 그런 힘이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독일 작가 팀 아이텔(46) 회화의 인물은 등을 보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고 싶어진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그가 나 또는 지인으로 보인다. 단색 평면과 직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작품 속 장소도 익숙하다. 얼굴 없는 인물, 디테일을 제거한 공간을 마주하고 관객은 저마다 기억을 들춰낸다. 작가가 해석의 문을 슬쩍 열어 둔 덕분이다.
6년만의 국내 개인전에 작가는 신작 11점을 들고 왔다. 정통 회화의 복권, 추상과 구상의 융합을 추구하는 독일 신라이프치히파의 대표 작가가 “그 동안 실험한 회화 테크닉을 집대성한 전시”(학고재갤러리)다. 6년 전 전시 작품에 여럿 등장한 노숙자는 사라졌고, 색감은 따뜻해졌다. “노숙자가 많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로 몇 년 전 이사한 것 말고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 그림은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작가는 프랑스 국립 미술학교인 파리 에콜 데 보자르 회화과의 최연소 교수다. 옛 서독 출신으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옛 동독인 라이프치히에서 회화를 배웠다.
‘건축학 학습’(2017)에선 한 여성이 미술관 바닥에 앉아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다. 관객이 어떤 감정을 투영하느냐에 따라 절절한 이별의 편지를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지루한 학교 과제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모델은 공원에서 본, 작가가 모르는 여성이다. 작가는 낡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눈에 들어 오는 것을 찍은 뒤 대상을 콜라주처럼 캔버스 위에 합성해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 작가에게 중요한 건 인물의 신원과 표정이 아니라 그가 공간에 남기는 흔적과 분위기다.
‘멀다, 그러나 가깝다(Apparition of a Distance, however Near)’라고 작가가 이름 붙인 전시는 11월 12일까지다. 작가는 갤러리 설계도를 본 뒤 공간에 맞게 작품을 구상하고 그렸다고 한다. 작품을 걸지 않은 빈 벽도 작가의 연출이라고 하니, 구석구석 둘러보자.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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