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천 계양구 작전동에 있는 상가 건물. ‘김행직 당구클럽’이란 간판이 걸린 8층으로 올라가니 분주하게 손님들에게 당구공을 전달하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청년이 눈에 띄었다. 여느 당구장의 ‘알바생’과 다를 바 없는 이는 며칠 전 세계를 제패한 선수였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아버지가 마련한 당구장이 그의 훈련장 겸 일터다. 김행직(25ㆍ전남당구연맹)은 “이 곳에서 아버지의 일도 도우며 매일 6,7시간 정도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특기도 당구, 취미도 당구’라는 김행직 다운 생활이다.
김행직은 지난 7월 포르투갈 스리쿠션 월드컵에서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고(故) 김경률, 최성원(부산시체육회), 강동궁(동양기계), 조재호(서울시청), 허정한(경남당구연맹)을 포함해 한국인 통산 7번째 월드컵 우승이다. 그런데 감흥을 느낄 겨를도 없이 지난 1일엔 청주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17 청주직지 스리쿠션 월드컵 결승에서 또 정상에 올랐다. 1986년 파리 1회 월드컵 이후 2개 대회 연속 우승자는 '4대 천왕'으로 불리는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스페인),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4명뿐이다. 김행직은 “첫 우승 때는 얼떨떨했고, 두 번째는 아시아 선수 최초 2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감흥이 남달랐다”고 떠올렸다.
김행직은 폭발적인 하이런(한 경기에서 한 번에 기록한 최다득점)보다 꾸준한 경기 운용이 강점이다. 청주직지 월드컵 결승에서도 무랏 나시 초크루(터키)를 상대로 초반부터 거의 공타 없이 점수를 따내며 20-9로 앞서갔다. 김행직은 브레이크 타임 이후에도 연속 다득점 하며 점수차를 벌린 끝에 16이닝 만에 40점에 도달해 40-30으로 승리했다. 32강에서는 응고딘나이(베트남), 16강에서 허정한, 8강에서 조재호를 꺾었다. 4강에서는 루피 세넷(터키)을 눌렀다. 김행직은 “사실 청주 월드컵 전에 열린 LG유플러스 대회에서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아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그 여파가 남아 있었다”면서 “첫 경기 연습할 때까지도 짜증도 나고 자신이 없었는데 운 좋게 이기고 나니 이후부터 잘 풀렸다”고 떠올렸다.
김행직의 폭풍 성장은 당구계에서 흔치 않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동네 당구장에서도 나이 지긋한 노년까지 즐기는 모습이 흔한 당구는 선수로도 나이 제한이 없다. 때문에 40~50대까지도 전성기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유일한 스포츠다. 그런데 김행직은 일찌감치 꽃을 피웠다. 김행직은 “전북 익산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세 살 때부터 큐를 잡았다”고 떠올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성인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신동’으로 소문난 김행직은 국내 처음으로 당구부를 창설한 수원 매탄고교에 진학했다. 지금 30대 후반 이상의 선수들이 대개 당구장이 불량 청소년 탈선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시절 재야의 고수로 이름나 선수의 길에 접어든 반면, 김행직은 ‘양지’로 나온 당구에서 체계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 선수가 된 첫 번째 케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김행직은 “당구부에 소속돼 있었고 선배, 스승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혼자 하는 스포츠라 스스로 연습하고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돌아봤다.
김행직은 고교 1학년 때인 2007년 스페인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그는 또 2010년 이후 3년 연속 우승하며 사상 최초로 4회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2011년에는 당구황제 브롬달이 속해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 1부리그 1위팀 호스터 에크에 입단했다. 2013년 국내로 돌아와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친 뒤 복귀 직후 아시아 선수권을 제패하며 역대 최연소 국내 랭킹 1위에도 올랐다.
10대 후반부터 고공비행을 한 끝에 25세의 나이에 세계랭킹 3위까지 치솟은 김행직은 “목표로 했던 세계1위와 월드컵 우승을 생각보다 빨리 이뤄가는 것 같다”면서 “내 천직은 역시 당구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천=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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