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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현금부자’ 귀뚜라미, 계열사 1곳 빼고 모두 비상장

입력
2017.10.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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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비율 13%ㆍ풍부한 유동성

굳이 기업공개 필요성 못 느껴

무상급식 반대투표 독려 논란에

최진민 회장 경영일선 물러났지만

1년여 만에 사실상 복귀한 듯

귀뚜라미 화곡 사업장
귀뚜라미 화곡 사업장

지난 2011년 10월 보일러 분야 중견기업 귀뚜라미 그룹 최진민 회장이 퇴진 의사를 밝히자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귀뚜라미 측은 "창업주인 최 회장이 수출용 제품 기술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재계에서는 최 회장 퇴진을 그해 8월 실시된 ‘서울시 초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와 연관해 보는 사람이 많았다.

최 회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당시 회사 내부 통신망에 무상급식 투표를 독려하는 공지를 두 차례 올린 혐의로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했다. 최 회장은 당시 대구방송(現 TBC)의 회장직(대표이사)도 겸하고 있어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되도록 투표하라고 독려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내 인트라넷에 ‘서울시민 모두, 오세훈의 황산벌 싸움 도와야’라는 제목으로 “빨갱이들이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의 상징, 무상급식을 서울 시민의 적극적 참여로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또 ‘공짜근성=거지근성’이라는 제목으로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먹게 하는 건 서울역 노숙자 근성을 준비시키는 것”이라며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공짜 점심 먹고 자라면 나이 들어서도 무료 배급소 앞에 줄을 서게 된다”고도 썼다.

논란이 확산되자 귀뚜라미 측은 “최 회장이 직접 쓴 게 아니라 타인의 글과 지인에게 받은 글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악화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최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가 무산된 뒤 2개월 뒤였다.

보일러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은 퇴진한 지 1년여 만에 귀뚜라미 신제품 출시 기념식을 진두지휘하며 사실상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며 “지금도 회사 중요 경영사항을 보고 받고 결정하는 등 사실상 경영일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0년 보일러 산업 산증인…과장 광고 논란도

귀뚜라미는 최진민 회장이 1962년 설립한 ‘신생보일러’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신생보일러는 연탄이나 나무를 때서 구들장 난방을 하던 시절, 집 바닥에 파이프를 깔아 온수로 온돌난방을 하는 연탄보일러를 국내 최초로 보급했다.

이후 귀뚜라미는 1980년대 해외로 보일러를 최초로 수출하는 등 보일러 업계에 무수히 많은 최초 기록을 세우며 국내 대표 보일러 업체로 부상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감각적인 TV 광고를 앞세워 ‘거꾸로 타는 보일러’ 와 ‘4번 타는 보일러’ 등의 제품을 연달아 히트시켜 소비자에게 친숙한 기업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1년 최 회장의 무상급식 반대투표 독려 논란에다 귀뚜라미가 허위ㆍ과장 광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귀뚜라미는 자사 제품에 적용된 ‘4PASS 열교환기’와 ‘콘덴싱’ 기술을 ‘세계 최초’라고 광고했으나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4PASS 열교환기는 약 150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으며, 콘덴싱도 1978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개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귀뚜라미에 광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귀뚜라미는 이보다 앞선 2013년 경쟁사 경동나비엔이 ‘국내 판매 1등’이라는 허위광고를 했다며 공정위에 이를 신고했으나 허위 광고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져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사인 귀뚜라미가 당시 명확한 보일러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아 그동안 업체별 시장 점유율 현황이 명확히 집계되지 않았었다”며 “당시 공정위 조사로 경동나비엔이 2011년 이후 업계 1위 자리로 올라섰다는 게 간접적으로 증명이 됐었다”고 말했다.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유동성 풍부 귀뚜라미, 주요 계열사 모두 비상장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 범양냉방, 신성엔지니어링, 나노켐, 귀뚜라미센추리 등 총 18개의 계열사를 통해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중 보일러 사업을 벌이는 귀뚜라미가 연간 5,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그룹사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귀뚜라미그룹의 가장 큰 특징은 TBC를 제외하고 계열사 모두가 증시에 상장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계열사 대부분이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어 굳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아도 회사 운영에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주력 계열사인 귀뚜라미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13.08%에 불과하다. 업종마다 다르지만 통상 부채비율이 100% 이하면 우량한 재무건전성을 갖췄다고 평가하는 점을 고려하면 귀뚜라미는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의 자금 보유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도 귀뚜라미는 지난해 653.79%를 기록해, 통상 우량한 재무건전성을 갖춘 기업의 유동비율로 평가받는 기준 200%를 크게 뛰어넘고 있다.

주요 계열사가 모두 비상장이다 보니 귀뚜라미 기업에 대한 기업 정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귀뚜라미는 지난 2011년까지 감사보고서를 통해 최진민 회장 등 5명이 지분 61.78%를 확보해 최대주주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그 이후에는 주요 주주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계열사 지분 현황이 공개된 2016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귀뚜라미는 그룹 주요 계열사인 귀뚜라미범양냉방(99.3%), 신성엔지니어링(100%), 나노켐(52.81%) 등의 최대주주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 회장이 귀뚜라미를 통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귀뚜라미 측은 “2011년 이후 지배구조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후계구도 중심에 있는 두 아들

귀뚜라미 후계구도 중심에는 최 회장의 두 아들 성환(40)씨와 영환(37)씨가 있다. 장남 성환씨는 2000년대 초반 귀뚜라미에 입사한 후 현재까지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차남 영환씨도 2014년 학업을 뒤늦게 마치고 회사에 합류해 후계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장사의 특성상 두 아들이 회사 지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장남보다 열 살 많은 장녀 수영(50)씨는 그룹이 운영하는 한탄강CC 등에서 근무하며 그룹 레저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차녀 혜영씨는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나, 3녀 문경(39)씨는 그룹 외식 계열사인 닥터로빈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차녀를 제외한 최 회장 자녀들이 모두 회사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나 10년 이상 후계 수업을 받은 장남 최성환 전무가 후계구도 중심에 있다는 게 중론”이라며 “다만 구체적 지분 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최 전무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전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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