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전세계 경영학계에서 ‘사람중심 경영’은 괴짜 혹은 몽상적 이론 정도로 여겨졌다. 단기 이익 극대화를 위한 무한 경쟁과 자본ㆍ기술 위주의 효율추구가 기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란 인식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인간관계나 종업원에 대한 배려는 수익 창출에 성공한 이후 원활한 노사관계 혹은 노무관리를 위한 비용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세계 중소기업학계에서 그런 기조에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장기침체를 타계할 새로운 성장모델로 사람중심 경영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15년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에 ‘2030 지속가능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핵심 개념으로 중소ㆍ벤처기업에서의 ‘사람중심 경영’을 강조한 뒤에는 확고한 대세가 됐다. 유엔은 올해 4월에도 ‘사람중심 경영’의 지속적 추진을 위해 매년 6월27일을 ‘세계중소기업의 날’로 지정하고 회원국들에게 이날을 기념토록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윈슬로 사전트 미국 중소기업청(SBA) 전 수석고문은 “사람중심 경영은 미국에서도 중요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소기업 애로 사항을 의회와 행정부에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던 사전트 전 고문은 “사람중심 경영이 활성화된 곳일수록 직원 만족도와 생산성ㆍ제품의 질도 높다”고 강조했다.
‘사람중심 경영’이 중장기적으로 기업 성과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는 실증 연구결과도 국제 경영학계에서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세계중소기업학회(ICSB)는 주요 25개국의 250개 중소ㆍ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 실증 연구를 벌여 마무리 단계다. 구체적 결과는 이달 말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인데, ‘사람중심 경영’ 지수가 높은 기업일수록 시장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혁신성도 높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기업 수익성(5년간 영업이익)도 높인다는 점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숭실대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황원일 교수는 “이 연구는 ‘사람중심 경영’과 기업 성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새롭게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돈 잘 버는 기업이 시혜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도 임금ㆍ복지를 강화하는 게 기업성과를 높이는 투자라는 점이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되고 있다. 일본 호세이(法政)대 사카모토 코지(坂本光司) 교수에 따르면 40년 동안 7,000개 중소기업을 분석한 결과, 경기 부침과 관계없이 이익을 내는 10% 정도의 중소기업은 대부분 ‘사람중심 경영’을 펴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베론 해난 교수도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해난 교수는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을 ‘사업중심’과 ‘사람중심’ 집단으로 나눠 7년간 자료를 수집했다. 그 결과 사업중심 기업보다 사람중심 기업이 더 지속 가능한 성장모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금전적 보상을 매개로 사람을 모으고 성과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헌신과 몰입을 끌어내는 사람중심 모델이 창업 기업의 생존가능성과 성장성에서 더욱 강한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중심 경영’은 미래 지향성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이미 시작된 4차 혁명의 와중에서 기업 생존에 필수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아이만 타라비시 교수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진전될 경우 저숙련 노동과 전문직 인력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사회의 긴장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며 “사람중심 경영은 지속적이고 조화로운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조철환기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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