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맞추기 위해 작업자들 작업 무리수
최저가입찰로 장비 정비ㆍ안전은 뒷전
경력 15년 차의 타워크레인 기사 김모(41)씨는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덜컥 겁부터 난다. 강풍에 지상 최대 200m 높이의 대형크레인이 휘청거려도 정해진 하루 작업량은 다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순간풍속이 초속 15m 이상일 때 안전을 위해 작업을 중지하도록 한 기준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김씨는 17일 “대부분의 아파트 공사현장이 선분양제 방식이라 입주 때까지 무조건 공사를 끝내야 해 나쁜 기상에도 작업을 강행하기 일쑤며 그나마 풍속계도 없는 크레인도 많다”며 “건설사 요구에 싫은 내색도 못한다”고 한숨지었다.
타워크레인 업체도 고충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기 수원시의 타워크레인 업체 A사의 임원 이모(55)씨는 건설사의 공사현장 타워크레인 선정 입찰에 참여할 때마다 고민이 크다. 안전관리비까지 다 떼고 남은 가격(최저가)으로 입찰가를 써 내도 낙찰 받기가 쉽지 않아서다. 원청인 건설사가 최저가 입찰제를 통해 무조건 제일 낮은 입찰가를 써 낸 하청업체의 장비를 임대해 쓰는 구조 탓이다.
그는 “타워크레인 12톤 기준 한 달 적정 임대료가 700만원인데, 최근엔 400만~450만원까지 떨어졌고, 한때는 150만원에도 장비를 넣은 적도 있다”며 “저가 수주는 장비점검 소홀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지난 10일 경기 의정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는 이런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다. 이날 사고로 외아들의 결혼식을 한달 여 앞둔 50대 가장 등 3명이 참변을 당했다. 비슷한 유형의 타워크레인 사고는 올해만 6번 반복돼 12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타워크레인은 건설현장에서 수십톤의 무거운 자재를 들어 나르는 핵심 장비이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대형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하늘 위 흉기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사고 때 마다 정부가 나서 “사고 업체 퇴출”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타워크레인 사고가 ▦아파트 선분양제 ▦다단계 하청 ▦부실한 안전점검 ▦속도전 작업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겹친 ‘인재’인 만큼 사고원인이 되는 구조적 구습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현장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아파트 선분양제도는 공사여건과 무관하게 공사기간이 미리 정해져 있어 공기에 맞춰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부추긴다. 건설사 요구대로 공정을 진행하다 보면 현장안전을 위한 교육과 장비점검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5월 5명의 사상자를 낸 남양주 크레인 사고는 업체가 공기 단축을 위해 핵심부품을 정품이 아닌 인근 철공소에서 멋대로 만들어 사용한 데서 빚어진 인재로 결론 났다.
민주식 한국노총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정책국장은 “아파트 선분양제로 인해 입주지연 배상금을 물지 않으려는 건설사의 요구로 나쁜 기상여건에도 현장 근로자들은 무조건 공기에 맞춰 일한다”고 털어놨다.
업체의 안전 의식도 여전히 미비하다. 고용노동부의 ‘크레인 관련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밀안전검사도 받지 않아 과태료 처분된 크레인 수가 2014년 116대에서 2015년 148대, 지난해 205대로 증가추세를 보였다.
건설사가 최저가 입찰을 통해 값싼 임대료를 주고 타워크레인을 조달하는 최저가 입찰제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싼 값에 수주받은 하청업체가 비용절감을 위해 정비 등의 안전관리비를 줄일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방치해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책임 떠넘기기 관행도 일어난다. 우선 건설기계로 분류되는 타워크레인은 현재 검사 등 구조적 안전은 국토교통부가, 현장 작업 안전은 고용노동부로 이원화돼 책임 있는 대응이나 관리감독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사전 안전점검부터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크레인의 가동 전 기계적 결함 유무 등을 살피는 안전점검을 민간에 맡겨 진행한다. 크레인 업체들은 합격률이 높은 대행사에 검사를 몰아주고 대행사도 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봐주기식 검사관행이 팽배하다.
검찰의 처벌의지도 약하다. 17일 남양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월 5명의 사상자를 낸 타워크레인 붕괴사고와 관련, 원청업체인 현대엔지니어링 현장소장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현행법상 원청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강도 높은 책임 강화를 강조하는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했다.
김성점 한국노총 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정책국장은 “생명과 직결된 중차대한 안전점검을 민간에 맡기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5년간 무려 270여건의 사고가 빈발했는데도, 안전검사 통과율이 97%에 달할 정도다.
정부의 느슨한 규제로 숙련도가 떨어지는 근로자들이 현장에 즉시 투입되는 구조도 사고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크레인 설치ㆍ해체작업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24시간 단기 교육 이수생들이 고 위험 현장에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현장에서 크레인 조종사에게 신호를 주는 신호수는 2시간 교육만 받으면 일할 수 있다.
전국에서 운영중인 타워크레인 5,980대 중에 상당수가 개인 임대업자들이 크레인업체에 빌려주는 렌털 장비로, 장비부실과 노후화를 가속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타워크레인의 신고와 수리, 운전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부처의 일원화, 작업환경을 악화시키는 공기 단축과 최저가 입찰제, 다단계 하청, 장비 노후화에 따른 안전성 검사 강화 등의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신경재 경북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타워크레인은 설계에서 벗어난 그 어떤 작은 요인에도 붕괴 될 수 있는 최적화된 구조물”이라며 “사고 재발을 위해선 작업환경을 악화시키는 다단계 하도급과 최저가 입찰제는 물론 작업자의 자격요건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