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해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뒷조사를 벌여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이례적 보고를 한 사실이 드러나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전날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원 간부의 청와대 비선보고’ 자료에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지난해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이 행장의 비리를 캔 뒤 우 전 수석에게 보고한 내용이 나온다. 당시 우리은행은 이 행장의 첫 번째 임기(12월30일)가 끝나감에 따라 새 은행장 선출을 위한 절차를 준비하던 때였다. 우리은행 안팎에선 이 행장을 밀어 내고 차기 행장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당시 일부 또는 특정인이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통해 ‘이광구 흔들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문건이 작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의 부탁을 받은 우 전 수석이 국정원을 동원해 이 행장의 비리를 조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개혁위도 “특검 조사 결과 지난해 7월 최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은행장 인사청탁 관련 문건이 발견된 점에 비춰볼 때 최씨가 새로운 행장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당시 이 행장의 연임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최씨의 인사청탁 관련 문건 중 A 전 부행장의 이력서에 ‘우리은행장 추천 중’이라고 기재가 돼 있었다는 점도 이러한 시각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러나 A 전 부행장은 이날 “최씨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고, 이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적도 없다”며 관련 의혹들을 부인했다. 그는 또 “문건에 거론된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자초지종은 알 수 없지만 최씨와 관련돼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A 전 부행장은 평소 사내에서 말이 많지 않고 조용한 성격으로 정치적 색도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전 수석이 국정원의 우리은행 담당 직원이 아닌 다른 비선 라인을 통해 이 행장을 사찰한 점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이 따로 있는데, 그쪽이 아닌 국정원 내 비선라인이 이 행장에 대한 정보를 파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과 국정원은 온갖 공작에도 이 행장을 끌어내릴 결정적 비리는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월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정부 지분 중 일부 매각에 성공했고,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이사회는 올해 초 이 행장을 재선임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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