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정부 비판에 적극 대응
네이버 경영진 설득해 순화” 주문
“팟캐스트 ‘마을 라디오’ 좌파 성향
부적절한 보조금 집행 점검” 지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팟캐스트를 대통령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로 지목하고 이를 통제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가 이 매체를 회유ㆍ압박해 비판 수위를 낮추려고 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18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캐비닛 문건’에 따르면 2015년 5월 11일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 비판 기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직후로 박 전 대통령 비판 기사가 연일 나오고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으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물러나면서 여론이 악화하던 시기다.
이 전 실장은 “비판세력들의 대정부 비판 공세가 적극적이고 집요해지고 있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해 나갈 것”을 김성우 당시 홍보수석에게 주문했다. 그는 ”비판 세력들의 주된 활동 사이버공간이 ‘네이버’라면 그 경영진을 적극 설득, 순화시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언론 보도가 주로 소비되는 포털사이트에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유도하라는 지시로 해석된다. 당시 네이버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그런 요구를 받은 적 없다”면서 “요청을 받았다고 해도 (네이버가) 들어주거나 영향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시민의 목소리를 팟캐스트 형식으로 내보내는 ‘마을 라디오’ 방송도 정부 정책 기조에 비판적이고 배치된다고 판단, 통제하려 한 사실도 확인됐다. 2015년 6월 3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병기 전 실장은 “최근 IT기술 발전 및 지방자치단체 재정 지원 등으로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마을 라디오’ 개설이 활발하다”며 “일부 라디오 방송국이 좌파 지지기반 구축, 일부 정치인 의정홍보 등에 활용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을 라디오는 시ㆍ군ㆍ구 단위에서 주민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팟캐스트 방식으로 직접 지역사회와 관련된 이슈 등을 방송한다. 소규모 지역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뉴타운 개발 반대 등 정부 시책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부터 마을공동체 관련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 재정을 지원했다.
이 전 실장은 “(마을 라디오 방송 중) 부적절한 대상이 없는지 조사해보고, 이들에 대한 부적절한 보조금 집행은 없는지도 점검”하도록 조신 당시 미래전략수석과 정무수석실 관계자(당시 정무수석 공석)에게 지시했다. 마을 라디오는 방송법상 인ㆍ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개입할 방법이 마땅치 않자 우회 압박을 가한 것이다.
청와대가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했던 정황이 담긴 ‘캐비닛 문건’은 지난달 박 전 대통령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추가 증거로 법원에 제출됐다. 2013년 9월 30일부터 지난해 4월 10일까지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자료,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자료, 실수비 결과, 실수비 안건 및 결과 대통령 서면 보고서 등 4가지 형태 58건으로 구성돼 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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