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가사ㆍ중독성 있는 EDM 멜로디… 젊은층서 ‘갓곡’ 입소문
작년 열린음악회 출연 당시 엑소 팬들이 우연히 무대 보고
영상 올리며 4년 만에 빛 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쿨하게 풀어낸 인생찬가 호응
이 노래 부를 땐 주인공 된 기분
1주일 내내 공연해도 활력 넘쳐요
“4년 전에 접은 트로트를 엑소 팬이 살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
트로트 가수 김연자(58)는 요즘 무대에서 더 신바람이 난다. 10~20대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노래 ‘아모르파티’에 열렬히 환호하기 때문이다. “연자 언니”라는 함성은 기본, 노래에 맞춰 안무까지 따라 하는 젊은이도 생겼다. MBC ‘무한도전’ ‘복면가왕’, KBS ‘해피투게더’ 등과 같은 쟁쟁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출연 요청이 쏟아진다.
2013년 발표한 ‘아모르파티’는 김연자의 수많은 앨범 속에 묻혀 있던 곡이었다. 빠른 곡 전개에 젊은 층이 선호하는 EDM 멜로디까지, 어르신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노래라고 판단해 관련 활동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김연자가 KBS ‘열린음악회’ 무대에서 선보이면서 뒤늦게 빛을 발했다. 남성그룹 엑소 무대의 바로 뒤 순서로 공연을 펼친 게 기회가 됐다. 엑소를 응원하러 온 팬들이 우연히 김연자의 무대를 보게 됐고, 일부 팬들이 그의 공연 영상을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트로트와 EDM이 결합된 실험적인 음악에 “이 노래를 알기 전 내 인생은 무의미했다”, “올해의 수능금지곡” 등 재치 넘치는 칭찬 글들이 쏟아졌다. ‘아모르파티’의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친 한 네티즌은 이런 글까지 남겼다. “제발 이 노래를 40초만 들어주세요. 이 노래 살려야 한다. 우리는 ‘백세인생’도 살려낸 인간들이잖아. 모두 이 ‘갓곡’(신과 같은 노래)을 들어줘.” 이 네티즌이 올린 무대 영상은 2만건 이상 공유됐다.
‘아모르파티’가 입소문을 타면서 김연자는 여러 음원사이트 트로트 부문의 1위를 달성하며 발매 4년 만에 역주행에 성공했다. 지난 5월 ‘무한도전’에 출연한 후 인기는 더 치솟았다. “‘아모르파티’를 작곡한 윤일상 프로듀서가 얘기해주고 나서야 갑자기 왜 인기를 얻게 된 건지 알았어요. 국내에서 히트곡을 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노래가 뜨면서 꿈을 이루게 됐네요. 솔직히 지금 가수 활동을 못 하게 된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예요.”
“‘아모르파티’ 인기 이유? 욜로가 대세니까”
김연자는 1974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제작한 ‘말해줘요’로 데뷔해 43년째 활동 중이다. 1977년에 일본에 진출해 30여 년간 열도에서 ‘엔카의 여왕’으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 국내 활동 재개를 공식화하고 앨범 활동을 펼쳤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대표곡을 남기지는 못했다.
젊은 트로트 가수 장윤정 홍진영도 아닌데, 50대 중견가수의 트로트가 새삼 신세대의 지지를 받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김연자는 ‘아모르파티’가 깜짝 히트한 이유로 “시대 정서”를 들었다. 젊은 세대가 듣고 싶은 얘기를 콕콕 집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곡에서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라며 인생살이를 ‘쿨’하게 풀어냈다.
“‘아모르파티’는 스페인어인데, ‘아모르’(Amor)는 사랑, ‘파티’(Fati)는 운명을 말해요.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죠. 한 번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살자는 내용인데, 요즘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욜로’(You Only Live Once) 정신과 꼭 맞잖아요? 게다가 후렴구엔 중독성 강한 EDM 멜로디가 등장하니 젊은이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간 것 같아요.”
회사 대표와 친분이 있던 가수 신철의 소개로 윤일상을 만났다. “굴곡 많았던 인생살이를 다 흘려 보내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미의 ‘인생찬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애초 그는 가수 이은미의 ‘애인있어요’와 같은 절절한 정서가 담긴 발라드를 기대했는데, 정작 받은 곡은 EDM 장르였다. 당시엔 난해하고 어려웠던 곡이 지금 생각해보면 “가수의 장점을 잘 살린 선택”이 됐다.
“이 노래 할 때만은 제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요. 제 인생을 4분간 펼쳐 보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재미있다고 느끼니까 1주일 내내 공연을 해도 늘 활력이 넘쳐요. 어떤 사람들은 무대에 선 제가 ‘신들린 무당 같다’고 말할 정도죠. 다른 분들도 제 노래로 힘을 받아갔으면 좋겠어요.”
“트로트는 연기… 한은 꾸밀 수 없어”
김연자는 그의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14세 때 학업을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청계천의 오아시스레코드 사무실에서 “낮에는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연습과 공연을 반복”했다. 본격적인 활동은 1974년 TBC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시작했다.
1984년 정통 트로트 ‘수은등’으로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고, 1986년 ‘씨름의 노래’가 민속 씨름대회의 대표곡으로 선정돼 노래 속 가사인 “천하장사 만만세”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서울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도 히트했는데, 일본어로 개사한 이 곡이 히트하면서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게 되자 트로트만으로 활동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콘서트를 열어야 하는데 트로트만 보여줄 순 없잖아요. 그때부터 다양한 장르와 여러 국가의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저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는 게 가수로서 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노래를 익히면서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안 배운 외국어가 없을 정도죠.”
김연자는 그럼에도 “트로트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꺾기와 밀고 당기는 기본적인 기술도 그렇지만, 연기력도 단련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 인위적으로 꾸밀 수가 없다. 그는 “14세 때 날 가르치던 선생님이 ‘네가 인생의 쓴맛을 봐야 진짜 노래를 할 수 있다’ 했는데, 그 말이 맞다”며 “희로애락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트로트를 못 부른다”고 강조했다.
곧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김연자는 내년까지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강행군을 이어간다. 일본과 한국 활동을 병행하느라 얼마 전엔 1주일에 네 번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콘서트와 여러 방송 일정도 12월까지 꽉 차 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는 새로운 꿈을 그리고 있다.
“1인극 형식의 모노 뮤지컬을 꾸며보고 싶어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제가 제작, 노래, 연기까지 모두 제 마음대로 해 보이는 거죠. 그 꿈을 40대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꾸준히 노래하다 보면 ‘아모르파티’가 역주행한 것처럼, 그 꿈도 이뤄질지 누가 알겠어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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