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연준 의장들 정권 무관 ‘장수’
트럼프는 정권 바뀌자 교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이사가 새 의장이 되면, 재닛 옐런 현 의장은 1980년대 이후 ‘4년 단임’에 그치는 첫 사례로 남게 된다. 연준 의장의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감안, 정권의 이념과 무관하게 장기 재임을 허용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104년의 연준 역사에서 의장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건 1979년 폴 볼커 의장 취임 후부터라 할 수 있다. 1ㆍ2차 오일쇼크 여파로 취임 당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13.5%에 달했던 볼커는 한때 기준금리를 20% 이상까지 올릴 만큼 강력한 고금리 정책으로 맞섰다. 숱한 반발을 견디며 결국 1983년 물가를 3.2%까지 낮춘 그는 ‘인플레 파이터’란 전설적인 별명을 얻었다. 고금리 고통을 안긴 볼커를 임명했단 이유로 지미 카터 대통령을 공격했던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임 기간 볼커를 계속 중용한 건 역설적이다.
연준 의장을 세계 경제 대통령의 지위로 끌어올린 건 후임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이다. 무려 4명의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19년간 의장 자리를 지킨 그는 1987년 블랙먼데이, 1994년 멕시코 페소화 급락,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등 숱한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장기간 유지한 저금리 정책은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연준은 또 다시 대규모 돈 풀기로 대응했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은 벤 버넹키(2006~2014년) 의장은 제로금리도 모자라 연준이 직접 자산을 매입해 시중에 자금을 푸는 양적완화까지 단행했다.
최초의 여성 의장인 재닛 옐런(2014~2018년)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취임 후 양적완화를 종료시키고 4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지난 10월부터는 보유자산 축소까지 개시해 긴축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옐런은 약 40년 만에 연임에 실패한 첫 의장이 되면서 “정치에 희생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 이사로서의 임기는 2024년 1월까지지만 조만간 이사직에서도 사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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