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요코타 기지 내리자
미군 2000여명 ‘USA’ 연호
아베, 3시간 골프 라운딩 뒤
“서로 편안하게 속내 드러내
느긋하게 깊은 얘기 나눴다”
오찬은 햄버거, 만찬은 와규로
멜라니아ㆍ아베 부인 긴자 찾자
환영 인파 몰려 들어 북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에 매료됐던 일본의 들뜬 분위기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일 오전 아시아순방 첫 방문지인 일본에 도착하자 열도는 기다렸던 록스타가 무대에 오르기라도 한 듯 열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2박3일 실무방문 시작과 동시에 NHK 방송헬기가 떠올라 공항부터 골프장까지 대통령 행렬의 움직임을 낱낱이 생중계했고,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나타난 도쿄(東京) 긴자(銀座) 진주 매장 주변은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골프와 식사 등 이날 하루에만 5시간 가깝게 같이 보내며 밀월을 과시했다.
오전 10시38분 도쿄도 요코타(橫田) 미군기지 활주로에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태운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나타나면서 일본인들은 평소답지 않은 뜨거운 휴일을 시작했다. 활주로에 나온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곧바로 기지 격납고에 마련된 환영 행사장으로 이동해 기다리던 2,000여명의 미군장병 가족들 앞에 섰다.
“USA~ USA~”를 연호하는 이들에 호응해 트럼프 대통령도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고 연단에서 바로 윗옷을 벗어 항공재킷으로 갈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일 미군들에게 “일본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줘 고맙다”며 “일본은 미국과 수십년간 가장 중요한 파트너다. 내가 대통령인 한 미국은 압도적인 능력과 자금을 구사해 항상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각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두 정상의 골프 회동이 진행될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으로 미리 이동해 트럼프의 전용헬기 ‘마린 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낮 12시 클럽하우스 앞에 트럼프 일행이 도착하자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가 악수하며 잠시 카메라 앞에 섰다. 트럼프가 “Beautiful day!(아름다운 날이다)”라고 하자, 아베 총리는 “Best weather!(최고의 날씨다)”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골프 회동에 앞서 미국산 쇠고기가 패티로 들어간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도널드&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라고 적힌 흰색 모자에 함께 서명한 후 나눠 써 우정도 과시했다. 골프 라운딩에는 세계랭킹 4위의 일본선수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가 동반했다. 두 정상은 오후 2시55분쯤 골프장을 떠날 때까지 오찬과 9홀 라운딩을 포함해 3시간가량을 함께 보냈다. 5시간 동안 골프를 쳤던 지난 2월 플로리다 회동 때보다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베 총리는 골프 회동 뒤 기자들에게 “골프장에서는 플레이 중 대화가 들뜨게 된다. 서로 편안하게 속내를 드러낼 수 있어 여러 어려운 화제를 섞어가며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대북대응과 무역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선수 두 멋있는 사람들과 함께 골프를 하고 있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스윙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골프경기장으로 사용될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은 근처에 큰 건물이 없어 경호에 용이하다는 점이 고려됐다. 트럼프의 골프실력은 최근 68타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반면, 아베 총리는 90타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마쓰야마 선수의 동행에 대해 일본 내에선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골프선수가 동행하면 화제가 골프 위주로 흘러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가 갑자기 일본에 곤란한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두 정상의 골프밀월 동안 멜라니아 여사와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진주로 유명한 긴자의 ‘미키모토’매장을 방문해 수많은 시민의 환영을 받았다. 이 자리에선 미에(三重)현 출신 해녀들이 진주의 종류와 양식의 역사를 설명했다.
미일 정상 일행은 저녁엔 긴자의 와규(和牛ㆍ일본 고급 소고기) 뎃판야키(철판구이)집 ‘우카이테이(うかい亭)’에서 1시반30분 넘게 비공식 만찬을 가졌다. 미슐랭가이드에 나오며 저녁 메뉴가 최소 2만엔 이상인 고급음식점이다. 개인실에서 두 정상 부부와 통역만 배석했고, 별실에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등 소수 인사들이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기자들에게 “(양국) 관계는 정말로 대단하다. 지금보다 우리가 일본과 더 가까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미일동맹을 강조했다. 또 아베 총리 측의 대대적인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에 화답하듯 “나와 아베는 서로 좋아하고 두 나라도 서로 좋아한다”며 “북한과 무역, 그리고 다른 문제들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들을 토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경시청은 6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도쿄 미나토구 영빈관 등 트럼프 동선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2만1,000명의 경비 인력을 배치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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