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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빛과 그림자] 1월 한보 부도가 서막→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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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빛과 그림자] 1월 한보 부도가 서막→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요청

입력
2017.11.06 04:0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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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4일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본점 11층 신광식 행장실로 들이닥쳤다. 그는 “만나지 않겠다”는 신 행장에게 “한보뿐 아니라 관련자들이 다 죽는다”며 추가대출을 요구했다. 이미 한보철강은 ‘은행돈 먹는 불가사리’로 소문이 나 있었다. 신 행장은 “죽으면 죽었지 더는 못해 준다”고 버텼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사채로 연명하던 한보는 결국 1월20일 어음을 막지 못했고 “부도가 불가피하다”는 이석채 경제수석의 보고와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로 1월23일 최종부도 처리됐다. 97년을 뒤흔든 외환위기의 서막이었다.

그때까지도 외형상 한국경제는 안정적이었다. 96년 기록한 7%대 성장률, 5% 미만 물가 등을 근거로 국가신용등급(무디스 A1, S&P AA)은 그대로 유지됐다. 당초 예상의 4배까지 커진 경상적자(96년 237억달러)가 불안요인이었지만 정부와 대기업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금융사의 활발한 단기외채 차입과 한국의 고금리를 좇아 들어온 엔캐리 등 선진국 대출금에 시중에는 달러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쉽게 빌린 단기자금을 장기 시설투자에 쏟아 부은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이미 96년 말 382%에 달했다. ‘만기불일치’, ‘통화불일치’, ‘과잉부채 투자버블’의 3중 복합위험이 잠복된 상태였다.

6조원대 한보 부실은 금융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종금사들이 다투어 여신을 회수하자 다른 기업들도 연쇄 부도에 몰렸다. 삼미그룹(3월) 진로그룹(4월) 대농그룹(5월) 한신공영(6월)이 잇따라 부도처리 됐다. 정부는 부랴부랴 ‘부도유예협약’과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내놓고 외환시장 개입으로 줄어든 외환보유액을 보충했다. 초여름엔 위기가 잠시 잦아드는 듯 했다.

그러나 7월 초 바트화 폭락으로 태국발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상황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7월15일 재계 서열 8위 기아차그룹이 부도를 맞고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갔다. 한보사태에 놀란 금융사들이 단기채무 비율이 절반을 넘던(57%) 기아차 대출금을 정부 만류에도 일제히 회수한 것이다.

한보 사태가 서막이었다면 기아차 사태는 태풍이었다. 태국발 위기와 기아차 사태 이후 국내 금융사들은 해외에서 달러를 구하지 못하게 됐다. 태국발 위기에 놀란 선진국 투자금은 슬슬 아시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10월20일 헤지펀드 공격을 받은 홍콩증시가 폭락하면서 위기는 아시아 전체로 번졌다. 1,000억달러 안팎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과 대만은 간신히 위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한국 시장에선 외국인의 투매를 막을 수 없었다. 민간기업의 위기가 국가적 외환위기로 급변한 순간이었다.

10월28일 ‘아시아를 떠나라’는 모건스탠리 보고서로 주가 지수 500선이 붕괴되고 사상 처음 외환거래가 중단됐다. 10월29일 발표된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비웃듯 주식투매와 환율급등은 이어졌다. 11월5일 홍콩 페레그린 증권이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는 보고서를 내자 기존 달러대출의 만기연장까지 완전히 막히게 됐다. 11월7일 정부 내 긴급대책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 필요성이 첫 언급된 데 이어 11월13일 사실상 ‘IMF행’이 결정됐다. 11월21일 임창열 부총리는 IMF 구제금융 요청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위기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IMF행 선언 이후 실무협상이 계속되며 시장의 공황 심리(패닉)는 더 심해졌다. IMF 자금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더 본격화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심지어 12월3일 협상이 타결되고 12월5일 IMF 지원금 55억달러가 들어왔음에도 국제 채권단은 기다렸다는 듯 다퉈 돈을 빼가기 시작했다. 12월5일 고려증권, 12월6일 한라그룹이 부도를 냈고 종금사들의 무차별 자금회수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12월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IMF 지원을 받는 상태에서 국가부도를 낼 수 있다”고 보도했다.

12월18일 외환보유액이 다시 39억4,000만달러까지 줄고, 12월23일 국가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대한민국호는 12월24일 성탄 전야에 극적으로 숨을 돌린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IMF 협약 이행’ 약속을 받아낸 뒤에야, 미국의 요청을 받은 월가 은행들과 주요 7개국(G7) 금융사들이 채권회수를 잠정 중단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고통스런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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