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20년간 한국의 거시경제 지표는 ‘상전벽해’ 수준으로 개선됐다. 외환보유액이 19배로 불어나는 등 외환 ‘방파제’는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성공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안정된 재정건전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도 같은 기간 11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6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위기 때인 97년 말 204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엔 3,845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는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외환보유액이다. 97년 연간 103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도 지난해엔 987억 달러 흑자로 바뀌었다. 경상수지는 98년 이후 19년 연속 흑자 기조다. 94~97년 4년 연속 경상수지 적자(총 483억 달러)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 급격하게 한국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외채(만기 1년 미만)의 외환보유액 대비 비중도 97년 말 286.0%에서 올해 6월말엔 30.8%로 대폭 낮아졌다. 지금 갖고 있는 외환보유액의 30%만으로 모든 단기외채를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3대 지표(외환보유액, 경상수지 흑자, 단기외채 비중) 모두 양호해 자본유출에 따른 ‘쇼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가 경제를 지키는 ‘최후 보루’인 정부의 곳간도 탄탄하다. 2015년 기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4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7번째로 낮다. 97년 말 투기등급인 ‘B+’까지 떨어졌던 국가신용등급은 어느새 11단계나 상승, ‘AA’(세 번째 높은 등급) 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S&P는 지난 8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며 “양호한 재정ㆍ대외건전성이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처럼 성공적인 외환위기 극복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 측면에서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특히 가계의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안 좋다. 무엇보다 빈부 격차로 인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도시가구(2인 이상)의 5분위 배율(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합계 격차)은 96년 4.01배(시장소득 기준)였지만 지난해엔 6.27배로 급증했다.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의 비율)도 9.1%에서 15.4%로 늘었다. 90년대 7%대였던 잠재성장률(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은 최근 2%대로 추락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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