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모든 예배 참석 요구
복종 안 하면 매로 때리며 학대도
“난 신앙이 없다”란 말도 못 꺼내
대화 시도하려 해도 종교가 장벽
불안할수록 완벽주의도 심해져
어머니, 아들과 자신 분리 못해
강압적 방식으로 가족 전도하며
중요한 순간에 선택권을 박탈
한 인간으로서 성장과정 거쳐
정서적으로 단단히 발달돼야
올해 36세 남자입니다. 부모님의 지속적인 신앙생활 강요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어른 나이를 한참 넘겼지만 지금도 제가 신앙이 없다는 걸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일요예배, 일요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 모든 예배에 참석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교회 모임에 늦거나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어요. 중학생 땐 매주 가는 기도원에 절 데려 갔습니다. 기도원의 광적인 분위기가 무서웠지만 온갖 압박으로 어떻게든 데리고 가셨어요. 20년간 교사로 일하신 어머니는 자식의 순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복종이란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그러나 신앙 외의 분야에선 자식에게 별 관심이 없으셨어요.
고등학생 때 가족과 떨어져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습 때 수학 문제집을 펴면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어요. 뭔가 부족하고 완성된 느낌이 안 들어 계속 보고 또 보고, 수학공식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증명해 보는 등 3시간 내내 책 한 장을 못 넘겼어요. 알지 못할 불안에 지쳐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절 보러 오셨어요. 건네신 편지 봉투 안엔 성경구절이 빽빽이 써있는 A4용지 두어 장이 있었습니다. 찾아보고 위로를 얻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하자 어머니는 엄청나게 역정을 내셨습니다. 공부가 안돼 답답한데 신앙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방안에서 거의 몸을 비틀며 “나도 모르겠다”고 울부짖었습니다.
2학년 때 일반고로 전학을 간 뒤 성적이 올랐으나 불안감은 계속 됐습니다. 애써 억누르며 대입 재수생활을 하던 중에도 어머니 성화로 새벽예배에 참석해야 했어요. 하루는 제가 못 일어나자 어머니가 자고 있는 절 매로 때려서 놀라 깬 적이 있습니다. 옷을 걸치고 길거리로 나가 입간판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질렀어요. 그게 제가 처음으로 한 불만 표출입니다. 어머니에게든, 저 자신에게든요.
어머니에겐 종교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라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지만 새어머니에게서 사랑 받지 못하고, 결혼 뒤엔 시집살이를 심하게 하면서 더 종교에 매달리시게 된 것 같아요. 시집과 갈등이 심했을 땐 동생을 임신한 채로 하루 한끼만 먹으며 금식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월급의 90%를 헌금으로 내겠다고 해 부부싸움이 나기도 했고요. 결국 성사되진 않았지만 빚까지 져가며 명절마다 교역자들에게 비싼 선물을 돌려 파산 위기에 처한 적도 있습니다. 전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지만 대화를 시도할 엄두가 안 납니다. 어머니는 당신 뜻대로 했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오지 않았을 거라고 하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강요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신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머니께 종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지금은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원에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부모님과 직접적인 마찰은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일들이 걱정스럽습니다. 교회를 안 나간 지 수년째지만, 부모님께는 교회에 가는 것처럼 적당히 둘러대거나 말을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그럴 수 없겠죠. 부모님은 종교가 다른 배우자를 용납하지 않으실 거고, 저는 종교로 결혼 여부를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배우자 될 사람과 말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 것 같아요. 결혼을 하더라도 배우자에게 쏟아질 종교 압박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은 올해 칠순입니다. 가엾은 마음에 살갑게 대화를 시도해도 주제는 다시 신앙으로 흘러가고, 저는 또 입을 다물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간의 관계조차 종교라는 장벽에 가로막힐 수 있구나 생각하면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듭니다.
시험 준비도 쉽지 않네요. 불안할수록 작은 것에 신경 쓰고 완벽주의가 심해져요. 어릴 때부터의 꿈도 아니고 그저 현실에 쫓겨 준비하는 거라, 공부가 안 되면 너무나 암담합니다. 그저 매일 힘들게 시간을 채우며 사는 것 같아요.
(이현욱, 가명, 36, 수험생)
현욱씨, 현욱씨의 사연을 보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돼요. 부모의 역할이란 뭘까요. 사랑과 가르침을 준다는 면에서 목사나 의사, 교사의 역할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부모에겐 부모의 역할이 있습니다. 목사도, 의사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부모만의 역할 말이에요.
현욱씨의 어머니는 엄마 보다는 신앙인으로서만 아들을 대한 것 같아요. 아이에게 율법을 소개하고 집회마다 데려갔지만, 정작 아이가 불안을 호소할 땐 위로하고 감싸주지 않았죠. 저는 종교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선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모든 종교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현욱씨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요.
현욱씨의 어머니에겐 신앙 활동이 본인의 삶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존재의 이유, 삶의 의미인 거죠. 이건 신과 얼마나 긴밀한 소통을 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예요. 신과의 만남이 없어도 교회 활동을 통해 존재의 기쁨을 찾는 것이 가능합니다. 얼마나 열심으로 집회에 참석하는지, 헌금을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교회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어머니에겐 이게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을 듯 합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존중 받지 못했던 사람이 종교 활동으로 인해 처음으로 중요한 사람이 됐어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고 자기로 인해 남들이 기뻐하는 일도 생겼어요. 전 이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진정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 종교 활동을 통해 삶을 지탱하게 된 건 본인의 삶에 있어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문제는 아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첫째 아들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했어요. 종교 활동으로 인해 본인이 누린 기쁨을 나누는 과정에서 아들을 자신과 다른 개인으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어요. ‘이렇게 기쁜데, 이렇게 좋은데, 넌 왜 이걸 안 해?’ 란 식이에요. 두 번째는 강요를 통해 아들에게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남편을 포함해서 자신과 가까운 가족들을 강요하고 압박했죠. 이건 건강하지 않습니다. 전도라는 말로 포장한다고 해서 소리 지르고 때리는 행동이 용납될 수는 없어요.
결과적으로 현욱씨에겐 자율성이 하나도 발달하지 못했어요. 책장을 못 넘기는 불안증세가 왜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시작됐을까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벗어나 종교 활동을 강요 받지 않게 됐을 때, 왜 그때 가장 불안이 컸을까요. 현욱씨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밟아나가야 할 발달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어요. 늘 억압과 강요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존중 받아야 할 존재이고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란 걸 경험한 적이 없어요. 현욱씨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라고는 고작 카레라이스와 볶음밥 중에 결정하는 것뿐이었을 거예요. 정작 가장 중요한 가치관에 있어선 일체의 선택권이 없었죠. 그래서 막상 모든 걸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현욱씨를 사로 잡은 건 해방감이 아니라 극도의 불안감이었어요. 언제 그런 걸 해봤어야죠.
어머니는 본인의 괴로운 삶을 종교를 통해 극복했다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받은 억압을 또 다른 형태로 아들에게 반복하고 있어요. 그것도 종교라는 고차원적인, 반박이 불가능한 가치를 들이대면서요. 그러나 신앙을 제대로 가지려면 인간으로서도 발달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자아의 기능이 건강해야 신앙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종교는 자아가 아니라 초자아입니다. 처벌과 통제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현욱씨는 자아의 발달이 거의 안된 상태에서 초자아만 과도하게 비대해져 있어요. 그러니 늘 불안하죠. 이건 칠순의 어머니가 돌아 가시거나 교회를 안 다닌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현욱씨에게 필요한 건 자기 인생에서 빠져 있는 자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현욱씨는 부모님에게 신앙이 없다는 걸 말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은 그럴 단계가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옳다고 믿더라도 그걸 부모님에게 말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옳지 않은 걸 옳지 않다고 말하려면 정서적으로 단단하게 발달이 돼 있어야 해요. 흔히 용기, 내공이라고 하죠. 현욱씨에겐 이게 없어요. 만약 용기를 끌어 모아 말한다고 해도 더 큰 불안에 떨게 될 거예요. 스스로 이런 상태란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선되어야 할 것은 현욱씨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인식하는 일이에요.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건 매우 잘한 겁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어 보세요. 그리고 그게 남한테 크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세요.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내 감정은 이렇구나’ 자신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용납하세요.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자아의 성장을 꼭 경험하시길 바랄게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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