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외교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일본 한국 중국 정상을 차례로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제 31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해 아시아 외교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북핵 문제 해결을 표면적 의제로 삼으면서도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실리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각국을 미국 중심으로 불러모으면서 미국의 무역 계획을 존중하도록 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주 한ㆍ중ㆍ일 순방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을 대하는 태도에 분명 온도차이가 있다. 지난 6일에서 10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한중일 3국에서 발표한 연설에 사용된 단어(알파벳 5자 이상)의 빈도수를 한국일보에서 분석한 결과 3국에서 가장 강조된 주제는 북핵ㆍ관계ㆍ무역이었다.
일본에 ‘그뤠잇’ 날리며 무역 챙기다
지난 6~7일 일본 순방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위대한’(greatㆍ41회)이다. 이 단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연설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 한 연설 중 ‘위대한’을 26회 언급했고, 중국에서도 19회 언급해 두 번째로 많이 사용했다.
다만 단어 사용 맥락이 다르다. 일본 순방 연설에서 ‘위대한’은 주로 전통적 우방인 미일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우리는 위대한(great) 우정을 쌓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6일 오후 미일 정상회담 전 연설) “위대한(great) 양국 사이의 역사적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아베 총리의 고향에 온 것이 기쁘다” (6일 오후 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연설) 등이다.
중국에서의 연설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뚜렷하다. 9일 열린 미중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미국이 놓인 지정학적 위기를 언급하며 “거대한(great) 책임이 우리(미중) 어깨에 놓여있다”라며 양국의 공조를 촉구한다. 같은 단어가 중국에서는 관계 개선을 요청하는 맥락으로 쓰인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trade)이라는 단어를 22회 언급하는 등 일본에서 특히 통상 문제를 자주 언급했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연설에 ‘북한’(North)을 25회 언급하며 북핵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과 비교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수년간 대일무역에서 상당한 적자를 보았다”(7일 일본 기업가와 만남) 등 미일간 호혜적 무역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냈다. 이에 일본 정ㆍ재계에서는 향후 열릴 양국 경제대화에서 미국이 일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과 ‘동맹’이 화두였던 한국 순방
한국에 온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7~8일 한국 방문기간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Northㆍ48회)을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하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양국의 동맹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키워드와 일치한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5번째로 자주 언급한 단어는 ‘동맹’(allianceㆍ19회)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부를 때 사용한 대통령(Presidentㆍ35회)과 이름인 트럼프(Trumpㆍ26)를 빼면 자주 언급한 단어 중 하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연설에서 ‘군사’(militaryㆍ15회)라는 단어를 ‘무역’(trade)만큼이나 많이 언급했다. 이는 한국과 관련해 북한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한미)가 제한된 군사적(military) 도구를 이용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만큼 미국은 방위력을 갖추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할 것이다” 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경제적 이익을 챙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이 많은 군사(military) 장비를 주문한 것에 매우 감사하다”(7일 양국정상회담 전 연설)라는 언급을 하는 등 군사 관련 문제에서도 실리를 챙긴 것을 볼 수 있다.
중국과 갈등 피하고 협력 강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관계’(relationship)를 강조했다. 그는 이 단어를 8~9일 중국 순방기간 중 연설에서 9회 언급하며 10번째로 많이 사용했다. 그는 “지금은 어느때보다 더 두 나라와 각국 국민들 간의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9일 미중 정상 공동기자회견)처럼 이 단어를 이용해 양국간 소통ㆍ협력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 ‘함께’(togetherㆍ8회)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중 양국은 무역 갈등을 적극 논의하면서도 관계개선에 방향을 맞췄다. 트럼프 대통령은9일 중국 재계 인사들과 만나면서 “미국 정부는 중국과 무역(tradeㆍ12회) 및 비즈니스(businessㆍ6회) 관계를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라며 “이 관계가 공정하고 호혜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기업가들과 만남에서 노골적으로 ‘대일 무역적자’를 언급한 것과 상반된다.
이처럼 미중 양국이 정상회담에서 이견을 부각시키지 않은 것은 중국과 경제협력 성과를 챙기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2기를 시작하며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드러낼 필요가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로 필요한 것을 챙기는 ‘윈윈’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관련기사 ▶ 경협 보따리 챙긴 트럼프, 대등 관계 과시한 시진핑)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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