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27㎝ 기생충… 장 속에 옥수수
170㎝ 키에 60㎏ 몸무게, 마른 체형
‘소장에서 발견된 최대 27㎝에 달하는 기생충, 옥수수 알갱이 그리고 몸무게 60㎏ 안팎의 마른 체형.’
수십 발의 총격을 피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극적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전 세계에 알린 건 분단된 대한민국의 팽팽한 긴장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김정은 체제 이후 붕괴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지난 13일 1차에 이어 15일 2차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교수는 이날 오후 3시30분 경기 수원시 병원 본관 지하 1층 아주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복강 내 분변, 기생충에 의한 오염이 심해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 정도 상태에서 환자를 잃은 경우는 없었다”며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했다. 이 교수가 북한군 병사의 건강상태 등을 공식적으로 알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교수는 “외관상 5군데 총상으로, 소장 7개 부위가 파열하고 9곳 이상의 장간막 파열 및 유실이 있었다”며 “첫 수술 때 소장 40~50㎝를 잘라 냈고, 이날은 복벽에 남아있던 1발의 총알을 제거한 뒤 봉합했다”고 설명했다. 북한군 병사는 1차 수술 때 무려 1.5ℓ의 피를 복부 등에서 쏟아냈으나 의료진의 처치로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군 병사의 몸에서 확인된 몇 가지 특이소견을 공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20대로 추정되는 이 병사의 키는 170㎝가 조금 안됐고, 몸무게는 61㎏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고3 남학생의 지난해 평균 키(173.5㎝)와 몸무게(70.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복개하자 총상으로 뚫린 소장 곳곳에서는 다량의 분변과 함께 수십여 마리의 기생충이 쏟아져 나왔다. 무려 27㎝에 달하는 성충도 있었다. 기생충에 의한 질환은 개발도상국의 저소득계층에서 나타나는 질환 가운데 하나다. 이 교수는 “국내외 수많은 환자를 봐 왔지만, 기생충이 장관 내에서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북한군 위생관리에 구멍이 뚫려있음을 시사했다. 병사의 소장 등에서는 소화가 덜된 음식물 찌꺼기가 검출됐는데, 대부분 옥수수 알갱이였다. 소장의 길이도 우리 성인남성의 평균(200여㎝)보다 40~50㎝ 작았고, 말단까지 변으로 차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영양이 불량했다”고 말했다. 식량난 등으로 남북 대치의 극단인 판문점을 지키는 병사들조차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음을 예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몸 속에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생충이 봉합 부위를 뚫고 나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현재 환자가 럭비공 같은 상태이긴 하나 더는 수술이 없도록 가능한 모든 검사를 이용해 치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 병사는 지난 13일 오후 3시31분쯤 귀순 과정에서 북한군의 40발 넘는 총격으로 쓰러졌으나, 미군 의무후송팀의 블랙호크 헬기가 아주대병원으로 응급처지를 하며 긴급 이송해 생명을 건졌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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