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한지 9년 된 36.3세 여성. 한국일보문학상(정세랑)과 대산문학상(손보미) 동인문학상(김애란) 현대문학상(김금희) 등 2017년도 소설부문 주요 문학상 수상자의 이력과 평균 나이다. 첫 창작집을 펴내기도 전에 수상하거나(김애란·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등단 3년 만에 수상하는(하성란·1999년 동인문학상) 등 그 동안 몇몇 파격적인 예외가 있었지만 이 문학상들의 수상자가 모두 30대이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동인문학상을 심사한 정과리 문학평론가는 “문학계 세대교체가 이루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달라진 심사 기준이 수상자 연령대 낮춰
우연히 맞아떨어진 현상으로 넘기기 어렵다. 주요 문학상 최종심에서 경합한 작가도 대개 등단 10년 안팎이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 작가들의 평균 나이는 38.5세, 등단한지 평균 8.6년이다. 첫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으로 올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37)는 역시 첫 장편소설을 쓴 김희선(45), 최정화(38)와 최종심에서 경합했다. 김언수(45), 김탁환(49), 백민석(46), 조선희(57) 등 중견작가는 최종심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달라진 심사 분위기가 세대교체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노벨문학상이 작가 생애 전체 작품을 평가하는 반면, 국내 문학상 대다수는 개별 작품에 상을 수여하는 기준이 있다. 하지만 이때도 작가의 이력이 함께 고려되곤 했다. 현대문학상을 심사한 박혜경 문학평론가는 “예전에는 등단 연도를 감안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작품 자체의 역량을 평가한다”며 “특히 작가의 전작보다 심사 대상작의 완성도가 나은지 아닌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다. 걸출한 작가라도 심사에 오른 작품이 기존 작품보다 함량이 떨어질 경우에는 가능성 있는 신인의 작품을 과감히 선택하는 심사위원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내면에 침잠하는 문학은 이제 그만
1980년대생 작가들의 문학상 수상은 단순한 세대교체 이상을 의미한다. 순문학계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수십 년간 한국문학의 전부처럼 해석됐던 ‘개인의 정체성, 내면을 탐구하는 소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정과리 평론가는 “20~30대 작가 역시 개인을 다루지만, 정체성이 아니라 활동성에 방점을 둔다”며 “하나의 세계를 해석하기 보다는 세계 안에서 인물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개인의 활동, 변화를 보는 게 수상자들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예컨대 김금희의 소설은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변하고 움직이고 있느냐를 보여주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어떤 인물형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며 “수상자 중 예전(1990년대) 특성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김애란의 소설 역시 윗세대와 구분되는 두드러지는 특징은 개인의 운동성”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대 들어 출판시장이 줄어들고 해외 번역서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문학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게 된 환경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는 진단이다. 그동안 한국소설의 특징한 ‘내면에 침잠하는’ 소설의 한계를 돌파하는 방안 중 하나로 기동성이 등장했고, 이 변화에 부응하는 작품이 각광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세는 여성작가
2017년도 주요 문학상 특징 중 하나는 수상자를 포함해 최종심에 오른 작가가 전부 여성이라는 점이다.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 10명 중 8명이 여성이었는데 이중 정세랑, 정이현, 조해진이 주요 수상 후보자로 논의됐고,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과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가 막판 각축을 벌였다.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7명 모두 여성이다.
달라진 독자 취향이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산문학상을 심사한 황종연 문학평론가는 “최근 10년 사이 작가, 평론가를 포함한 독자의 기대지평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세월호 참사를 전후로 포스트민주주의(절차적 민주주의, 법치 국가 성격이 유지됨에도 정부가 국민을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 비판, 여성혐오 논란 이후 탈마초적 문화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굉장한 힘을 갖게 됐고 소설을 쓰고 읽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한 게 여성작가”라고 설명했다. 수상자인 김애란, 김금희를 비롯해 박민정, 강화길 등 이른바 ‘영페미’(젊은 여성주의자)로 꼽히는 30대 여성작가들이 “단순히 젊고 전투적인 게 아니라 기성사회를 보는 방식이 이전과는 완전 다르다”(황종연 문학평론가)는 점에서 앞으로 문학계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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