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북 포항시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으로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안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축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필로티(2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1층에 기둥만 세워 주차 공간 등을 확보하는 것) 구조가 지진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대다수인 5층 이하 건축물은 사실상 내진설계 비전문가에게 검증이 맡겨져 있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건축 인허가를 받은 단독 주택(다가구 포함)과 다세대 주택은 모두 198만6,588호다. 단독주택이 89만1,299호, 각 세대별로 등기가 가능한 다세대 주택이 109만5,289호다. 건설업계에선 2002년부터 필로티 구조의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이 확산된 만큼 적어도 100만호가 넘는 주택이 필로티 형태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필로티 구조는 벽 대신 기둥이 건물을 떠 받치고 있다. 2002년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주차장 설치 기준이 가구당 0.5대에서 1대로 강화되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1층을 주차장으로 쓸 수 있어 주차 공간 확보가 쉽기 때문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1층 미분양 우려를 줄일 수 있고 입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더 용이해 2000년 중반 이후 지어진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은 대부분 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로티 건물은 이번 지진에서 확인됐듯 지진에 약하다. 천영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나무젓가락 위에 무거운 물체를 얹어 놓고 흔들면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크게 출렁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최기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도 “필로티 구조의 기둥은 벽보다 단면적이 적기 때문에 지진하중(지진으로 인해 구조물에 전달되는 외부 힘)이 분산되기 힘들다”며 “벽보다 붕괴 위험이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일본 구마모토 지진과 1999년 대만 치치 지진 당시에도 필로티 구조 건축물의 피해가 컸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해 ‘지진방재 개선대책’까지 내놓았던 국토부는 전국에 필로티 구조의 건축물이 얼마나 되는 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날 “필로티 구조물만 한정해 통계를 낸 게 없다”고 말했다. 건축구조기준에 ‘필로티 등과 같이 구조물의 불안정성이 있는 경우 건축물을 설계할 때 특별지진하중(일반 지진하중의 2.5배)을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사업자가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지방자치단체에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현행 건축법은 6층 이상 건물만 건축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 확인을 하도록 돼 있다.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대다수인 5층 이하 건물은 건축사의 검수만 받아도 된다. 최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사업자는 추가 비용을 들여 내진설계 전문 건축구조기술사에게 점검을 받느니 그냥 건축사에게 맡겨 비용을 줄인다”고 말했다. 비전문가에게 다가구ㆍ다세대 주택의 내진설계 검증이 맡겨지고 있는 꼴이다.
백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복합대응재난연구단장은 “필로피 구조나 기존 건축물의 내진 보강 공사비를 정부나 지자체가 보조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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