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참 못 그린단 말 칭찬 같아
… 순진한 아이들이 스승”
오세열 작가 인물화 개인전
‘무구한 눈’ 내달 17일까지 전시
“당신 그림 참 못 그린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린다는 72세의 작가, 오세열. 1972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인물화 33점을 모은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오세열: 무구한 눈’.
화면 속 오세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970~1980년대 그림 속 인물들은 시대를 닮아 검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했다. 1990년대부터 거친 질감과 선으로 그린 인물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 혹은 눈이 하나뿐인, 속도의 시대가 버거운 사람들. 액수, 점수, 평수의 이름으로 삶을 지배하는 숫자들이 화면에 등장한 것도 이 때다. 요즘 그림은 선명하고 유쾌하다. “나이 들면 밝은 게 좋아지는 게 순리 아닌가.” 작가가 행복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 목원대 교수를 정년 퇴임한 뒤 경기 양평에 작업실을 차리고 그림만 그리며 산다. 국내외 콜렉터 사이에서 몇 년 사이 주가가 치솟았다. 작가의 개인전은 올 들어 네 번째다.
작품은 운동장 모래 바닥에, 스케치북에 아이가 집중해서 그렸지만 어쩔 수 없이 엉성해 보이는 그림을 닮았다. 원근, 명암을 생략하고 힘 빼고 그렸다. “일부러 못 그리려고 애쓴다(웃음). 그림을 보고 내 나이를 떠올릴 수 없었으면 한다. 아이들 그림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아이들이 스승이다.” ‘무구한 눈’은 솔직한 직관의 눈, 그래서 끌리는 눈이다.
작가의 작법은 요즘 젊은 작가들과 다르다. 치밀한 구상을 하거나 사진, 영상을 참고한다거나 하지 않고 오직 상상만으로 그린다. 그림이 붓 끝에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다. “그림은 책임감으로 그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이다.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는다. 제목으로 관객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 그림에서 저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그림 곳곳에 붙인 머리핀, 껌 종이, 단추 같은 작은 오브제는 키우는 꽃들에 아침 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작가의 따뜻한 위트다. 오브제는 주로 길에서 주워 쓴다. “작은 물건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즐겁다. 재밌으면 그만이지, 커다란 의미를 담지 않는다.”
작가는 그림에 재능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서라벌예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30대 초반인 1976년 한국일보 한국미술대상 최고상, 1977년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금상을 받아 영스타로 떴다. 그런 작가는 ‘담백주의자’다. 고기를 즐기지 않고, 그림이 번들거리는 게 싫어 유화 물감의 기름기를 쏙 빼 쓴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그림 구입 제안이 왔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정부 기관 같은 곳에 작품이 들어 있는 게 싫다. 그냥 싫다.” 전시는 12월 17일까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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