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의 눈은 2개일까?’
‘만약 호랑이가 멸종되면 어떻게 될까?’
‘사자는 왜 갈기가 있을까’
여러분은 위와 같은 질문을 해 본적 있나요? 또는 위 질문에 답해본 적 있나요? 간단해 보이지만 답하기 쉽지 않은 이 질문은 세계적 명문대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입학면접 질문입니다.
옥스퍼드대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비롯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전세계 유명 정치인들을 배출했고,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등 저명한 과학자들도 길러냈죠.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역시 올해 신입생이 됐습니다.
옥스퍼드대는 대입 지원자들이 면접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매년 예상문제를 공개합니다. 우리 고3 학생들도 한 주 연기된 23일에 수능시험을 치르면 대입 면접 준비를 시작 할 텐데요. 한국 학생들과 영국 학생들이 답하게 될 면접 문제는 어떻게 다를까요? 지난달 공개된 옥스포드대 면접 예상질문을 2017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면접 및 구술고사와 비교해 봤습니다.
Q. 늦은 밤, 신호등이 빨간 불인데 길을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차를 몰고 지나가면 불법일까?
옥스포드대 법학과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예상 질문입니다. 법대 면접관 이모겐 굴드는 “이 질문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수험생이 평소 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 얼마나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라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한 수험생이 ‘신호를 지키지 않았을 때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면 불법이 아니다’라고 답하면 면접관들은 수험생이 법을 ‘피해예방’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겠죠. 이처럼 사실상 불법을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을 때 수험생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이 게임 등 다른 규칙과 어떻게 다른지, 법은 수단인지 목적인지 등에 대한 지원자의 논리가 드러납니다. 이처럼 간단한 한 줄의 질문에 면접관들의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Q. ‘나는 항공기 운항이 대기오염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비행기를 타든 말든 비행기는 뜬다. 그러므로 내가 비행기로 여행하지 않을 도덕적 이유가 없다.’ 이것은 일리 있는 주장인가?
철학 및 정치ㆍ경제학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입니다. 공공 문제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묻는 철학적 질문인데요. 면접관 세실 파브르는 이 질문이 결코 “수험생들의 철학 지식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질문을 만났을 때 수험생이 얼마나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파브르 면접관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말합니다.
인문학ㆍ사회과학 계열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위 질문들은 사실 서울대 면접고사에서 나온 질문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및 인문대ㆍ사범대학 문제는 플라톤의 ‘국가’ 와 한국여성연구소의 여성학 교양서인 ‘젠더와 사회’ 중 일부를 발췌해 제시한 뒤 ‘이를 읽고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지속되는지 논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대 입학처는 이 문제를 통해 ‘제시문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 개인의 윤리적 가치와 사회현상을 연결시키는 논리력과 창의력을 평가한다’고 설명합니다. 출제 의도는 비슷하지만 지문이 있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경제학과 지원생에게도 철학적 질문만 던지는 옥스포드대와 달리 서울대는 경제학과 및 경영대학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수학 구술고사 문제도 출제합니다. ‘수학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원자의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출문제보기)
Q. 방글라데시,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의 사망률(인구 1,000명 당 사망자 수)을 배열하시오
옥스포드 약학대학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입니다. 면접관 앤드류 킹은 “이 질문에 답변하는 수험생들 상당수가 개발도상국인 방글라데시가 가장 사망률이 높을 것이라 추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사망률이 높은 것은 일본입니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과 달리 방글라데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서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순서를 추론하기 위해 인구ㆍ연령ㆍ질병률 등 복합적 근거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따졌는지가 중요하죠. 만약 수험생이 약학이나 자연과학이 아닌 지리학ㆍ인류학 같은 인문학적 지식을 동원해도 그것이 추론에 도움이 되면 괜찮습니다.
이는 한국과 사뭇 다른 평가입니다. 서울대는 자연과학 및 공학 등 이과 자연계열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생명과학ㆍ화학ㆍ물리학 분야의 면접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이 질문들은 전공 내용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을 넘어서는 지식을 적용해 문제를 풀기 어렵지요. 우리 교육현실상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면 선행학습 유도 논란이 일어서 이처럼 교과서에 충실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별도 지문이 없고 특정 과목을 벗어난 복합적 질문 외에 옥스퍼드대 면접이 한국과 다른 점은 면접자와 수험생이 토론하는 점입니다. 사미나 칸 입학처장은 “면접관들은 학생들에게 토론거리가 될 질문을 주고 답변에 따라 계속 재차 질문하며 토론을 쌓아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학생이 대학에서 토론식 수업에 잘 적응할 지 살펴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면접은 알고 있는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는 잠재력을 보기 위해 면접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암기식 학력고사를 벗어나 사고력 평가를 지향’하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지 벌써 23년. 그러나 여전히 주입식 교육과 사교육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교육현실에 칸 처장의 말이 색다른 울림을 줍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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